지난 밤 그대
내 열한번째 손가락에
황금반지를 끼워 주었어요.
어두운 무덤에서 나와
환한 전시실 한켠에 누워있는,
저것은 칼이다.
이제 칼은 그 푸른
섬광을 잃었다.
끊임없이 제 안의 붉은 녹을
밀어내지만, 세월은 아직
항아리 속의 곡식처럼,
그것을 흙으로 돌려놓지 못했다.
물과 불로 증오심만 벼렸던
달빛마저 저밀 것 같던
푸른 날로,
스스로를 베었던 기억.
- 김수영(30) '살아있는 상처' 중
박물관은 자칫하면 죽음의 공간이다. 박물관의 전시물에 대한 해석이 없으면 그것들은 삶의 의미를 지니지 않고 불귀의 객으로 거기 있을 뿐이다.
사람의 눈이 닿을 때 그것들은 비로소 살아난다. 사전 속의 낱말들이 글 속에서 종종걸음으로 살아나듯이.
고대의 칼 도막 하나가 여기 나와 있다. 시인은 그 칼을 지난 날 스스로를 베었던 기억으로 되돌려놓고 싶어 눈빛을 빛내지만 그것은 오래전 칼의 눈빛을 잃은 녹슨 도막으로 차라리 아직 흙에 속하지도 못한 정신으로서의 증오심이던가. 과거의 어떤 물건에도 그 사연대로 엘레지를 담고 있다.
고은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