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애국심 돋우는 美정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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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얼마전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미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워싱턴 정치인들과 로비스트들에게 휘둘리는 미국 정치가 낳은 냉소주의가 미국 사회를 지탱해온 애국심을 좀먹고 있다고 개탄했다.

공화당 대선후보들 가운데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는 조지 W 부시 주지사의 군 경력이 문제되는 마당에 월남전 전쟁포로로 5년반 억류됐던 매케인이 미 유권자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지난 주말 유럽의 정예 선수들과 한판 승부를 벌였던 미국의 골퍼들은 마지막 뒤집기를 앞두고 부시 주지사가 손수 읽어준 앨러모 전투의 맹장 윌리엄 트래비스 대령의 편지에 귀를 기울였다.

대적하기 힘겨운 멕시코군과의 혈전 전야에 "승리냐 죽음이냐" 를 부르짖었던 트래비스의 절규 덕분인지 골프경기는 미국팀의 극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모임에도 불참한 채 골프장을 찾아 주변의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던 부시 주지사의 정치도박 역시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수많은 미국인이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골프경기 중계에 이따금 비춰지는 부시 주지사의 모습은 미 국민의 애국심과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정치라는 직업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업종이다. 여러모로 볼 때 흠잡을 데 없는 앨 고어 부통령의 인기가 생각처럼 뜨지않는 까닭도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도 가고 유일 초강국으로 남은 미국에 웬 애국심이며, 국경이 의미를 잃어가는 세계화 시절에 웬 고리타분한 얘기냐고 하겠지만 역사가 짧은 다민족사회 미 국민의 마음 속엔 여전히 애국심이 자리잡고 있다.

개혁과 변화를 외쳐대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를 진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의 텅 빈 가슴에 애국심을 채워줄 정치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길정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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