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나면 움직여 충격줄이는 '유연한 건물'연구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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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터키와 그리스의 지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면서 국내에서도 지진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8일 인천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지진공학회의 학술발표회에는 그동안 규모 5 이하로 평가됐던 36년 쌍계사 지진이 실물 모델 재현 실험을 통해 규모 5 이상인 것으로 확인돼 국내도 건물에 규모 5 이상의 지진에 대비하는 내진설계가 필수적인 것으로 지적됐다.

이 실험은 20세기 들어 한반도에 발생한 지진 중 명확한 사진과 자료가 남아있는 최초의 지진인 1936년 지리산 쌍계사 지진을 서울대 지구시스템공학부 김재관 (金在寬) 교수팀이 재현한 것. 당시 일본 총독부 문헌에는 '지진피해로 탑두가 떨어졌다' 는 내용이 남아 있었다.

김교수팀은 높이 3m의 쌍계사 탑을 일일이 해체해 석고로 본을 떠 층층이 쌓아올린 탑돌의 마찰부분까지 재현했다.

이 석고틀에 석고를 부어 화강암을 석고와 똑같은 모양으로 조각해 원래의 탑 모양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 후 대전 한국기계연구원에 있는 인공지진 발생장치에 탑을 설치해 탑두가 떨어질 때까지 단계별로 지진 강도를 높였다.

그 결과 규모 5 이상의 모의 지진에서 탑두가 심하게 진동하며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것.

김교수는 "그동안 일부에서 국내는 규모 5 정도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높지 않은데도 지나치게 엄격한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한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번 실험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고 말했다.

김교수팀은 모형탑을 서울대 구내에 설치해 문화재를 지진으로부터 보호하는 제진 (制振) 장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하에 각종 내진 공법의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 공학부 고현무 (高鉉武) 교수팀은 최근 높이 1백m의 인천 신공항 관제탑에 진동을 제어하는 장치를 설계해 설치했다.

이 장치는 지진이나 바람으로 흔들림이 생기면 컴퓨터가 10t규모의 강철덩어리 두 개를 흔들림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준다.

이런 제진 장치는 지진이 심한 일본에서 가장 앞서가는 분야. 국내 기술로 컴퓨터 제진장치를 설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교수는 "다리의 높은 주탑 (主塔) 이나 초고층 건물일수록 바람이나 지진으로 인한 진동의 영향이 커 이런 장치의 활용도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 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다리나 건물을 단단하고 강하게 짓는데 치중했다.

최근 경향은 고무 재질의 '지진 격리장치' 를 붙여 흔들림을 흡수하거나 첨단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진동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추를 달아 진동을 줄이는 방식이 선호되는 추세.

국내에서는 부산에 건설 중인 광안대교 등 30여개의 다리에 '지진 격리장치' 가 설치돼 있거나 설치 중에 있다.

국내에서 지진 관측이 과학적으로 시작된 것은 기상청이 지진관측에 나선 78년의 충남 홍성 지진부터. 국내 지진 연구는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지진의 메커니즘 특성을 규명하는 것과 이 지진들을 견뎌낼 수 있는 내진공법을 연구하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한국자원연구소 전명순 (全明純) 박사팀은 "한반도의 지진이 일본쪽보다는 중국쪽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 밝히기도 했다.

즉 한반도 지진은 유라시아판 밑으로 태평양 판이 이동하면서 일어나는 일본쪽 지진보다는 인도양 판에 유라시아 판이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중국 대륙쪽의 지진과 흡사한 형태를 지닌다는 것. 이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22개 지진의 운동방향을 분석한 결과로 그동안 국내 지진연구 중 가장 광범위하게 실시된 것이다.

연구를 공동수행한 자원연구소 전정수 (田正秀) 박사는 "이번의 데이터로 후속연구를 계속하면 어떤 지역에서 지진 발생 가능성이 큰 지를 알 수 있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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