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눈] 레슬링 '깜짝 금' 은 라이벌 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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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호는 하태연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기에 올림픽에서 2연속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자유분방한 성격인 심권호였지만 황소처럼 듬직하게 땀을 흘리는 하태연의 모습을 보면 대충대충 훈련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급에서 금메달을 딴 정지현(한체대)도 국내 라이벌의 덕을 톡톡히 봤다. 강경일(삼성생명)이라는, 이름처럼 강인하고 세계 6위 안에 드는 뛰어난 선수다. 정지현은 강경일에게서 정신적인 면뿐 아니라 기술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준결승에서 만난 아르멘 나자리안(불가리아)과의 경기에서 특히 그랬다. 나자리안은 올림픽 금메달 두 차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섯 차례 우승한 최강자다. 가로 들기를 하다 상대가 머리를 들면 앞 목을 잡아 굴리는 그의 기술은 모든 선수가 잘 알지만,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한번 걸려들면 단번에 6점 혹은 10점까지 따내면서 테크니컬 폴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가공할 기술이다.

그런데 정지현은 가로 들기에 대한 적응력이 강했다. 강경일이 이 기술을 주무기로 쓰기 때문이다. 국내 대회에서 여러 차례 강경일의 가로 들기에 당하던 정지현은 지난해 말 강경일을 이기기 시작했다.

정지현은 체조선수 출신답게 워낙 몸이 유연해 앞 목 돌리기에 대처하는 능력은 원래 강했다. 결국 나자리안이 정지현에게 할 수 있는 기술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반면 외국 선수들은 한국에서 정지현이 아니라 강경일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했을 것이다. 은메달까지는 강경일이 도와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지현은 여기저기 다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훈련하는 노력형 선수인데 좋은 결과를 내 더욱 반갑다.

방대두 상무 레슬링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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