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동상 세운 정성으로, 동서양고전번역원 만들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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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20면

9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63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시민 합창단원들이 한글날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4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대통령에게 ‘한글의 보편성과 경쟁력 제고 방안’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추진 정책으로 ‘세종사업 추진 방안’을 보고했다. 권력 핵심부가 언어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의 상관관계를 인식했다는 점은 반갑지만, 한글의 콘텐트 문제가 간과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9일 한글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높이 10.4m의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섰다. 어좌에 앉아 왼손에는 훈민정음을, 오른손은 가볍게 들어 백성을 굽어 살피는 성군의 정신을 살렸다.

번역 예산 10배 늘려라

동상을 만드는 데는 10원짜리 동전 3200만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청동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제 그 정성을 모아 모국어의 내실을 다질 차례다.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아갈 후손들을 위한 한글 콘텐트 확충에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동서양 고전의 번역은 한글 콘텐트를 확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번역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번역 지원금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현재 정부의 번역 지원은 10여 년 전부터 한국연구재단(옛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매년 펼치는 ‘명저 번역 지원사업’이 전부다. 2008년 지원금은 19억원이었다. 한글 콘텐트 확충에 투입되는 1년 예산이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다. 우리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고작 이만큼이다. 이러고도 한글이 활짝 피어 나길 기대한다면 위선이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동서양고전번역원’(가칭)의 설립을 제안한다. 한국연구재단의 ‘명저 번역 지원사업’을 분리·확대시키면 어떨까 싶다. 예산은 지금보다 적어도 10배 이상은 증액해야 할 것이다. 인문학 위기론이 팽배한 현시점에서 그나마 인문학 연구 인력이 가장 두텁게 층을 형성하고 있는 세대는 40대와 50대다.

그 아래는 학문 후속 세대의 단절이 우려될 정도로 ‘실용’에만 몰두하는 형국이다. 우리 인문학의 처지는 아기 울음소리 그친 농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이들 연구 인력이 더 늙기 전에 대대적인 활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친다면 뒤늦게 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마땅한 인력을 찾기 어려울 것 아닌가 하여 두려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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