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여자 50세는 위기가 아닌 희망의 시작이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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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04면

‘여자 50세’ 특별취재팀. 왼쪽부터 고란·구희령·이혁찬·김수정·박혜민·김정수 기자. 신인섭 기자

추석 연휴 첫날인 2일 배달된 중앙SUNDAY(4일자)를 기억하십니까. ‘내 나이 50, 뭐가 어때서….’ 반말투 제목의 기사와 함께 50세 김혜경 동덕여대 교수의 전신사진이 1면을 장식했습니다. 20~23면에는 만 50세인 1959년생과, 한국 나이 50세인 60년생 여성 50명의 사진과 인터뷰 분석기사가 실렸습니다. 보기 드문 신문 편집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50세 여성을 주목해 그들의 일과 사랑·희망을 다룬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남성과 20~40대 위주였습니다.

4일자 SPECIAL REPORT ‘내 나이 50, 뭐가 어때서’ 그 후

“신선한 시도였다”는 기자들의 평가에서부터 “삶의 지혜를 얻게 됐다”는 여성 독자들까지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회사원 김정윤씨는 “마흔을 넘어서면서 ‘50 이후’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고, 유치원생 아이를 키우느라 힘이 든다는 30대 중반의 김지현씨는 “50이란 나이를 희망의 나이로 보게 됐다”며 “기사 내용이 큰 힘이 됐다”고 했습니다. “많은 친구를 얻은 기분”이라는 쉰 살의 여성도, “젊은이들이 길게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도록 계기를 줬다”고 한 50대 남성도 있었습니다. ‘주부예찬론’ 또는 ‘알파걸’류의 과장된 묘사가 아닌, 진솔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여자나이 50’기획에는 중앙SUNDAY 여기자 5명이 참가했습니다. 기사 중에 여기자 5명의 나이(한국나이 31세에서 44세)도 공개했습니다. 쉰 살, 커밍아웃을 한 여성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7일 평가모임 때 기자들은 “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에게 감사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취재에 협조해 줘서라기보다는, 그들로부터 인생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흔 문턱에 선 박혜민·김정수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사실, 80년대 초반 대학 졸업 후 전문 분야를 개척해간 전문직 여성들과, 자신이 경영하는 의상실에서, 책 대여점에서, 가정에서 치열한 삶을 산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솔한 얘기는 모두 각각 장문의 인터뷰 기사로 써도 손색이 없는 감동이 담겨 있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곽정숙(장애여성 비례대표) 의원은 “자유롭고 외로운 싱글이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변화의 삶을 살아볼까 생각 중이다. 하하”라고 호쾌하게 답해 주셨습니다. 개그우먼 이성미씨는 취재요청을 받아들인 후에도 1주일이 지나서야 “이제야 시간이 난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스케줄에 쫓긴 그가 기자에게 전화한 시간은 기사 마감이 임박한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구희령 기자는 왕성한 현역의 활기를 느꼈다고 합니다.

고란 기자는 각 기업 홍보실에 취재협조 요청을 했다가 “50세는 커녕 아예 여자 임원이 없다”는 답변에 놀랐다고 합니다. 고란 기자의 입장에선 20년 앞서간 선배들의 척박한 상황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을 겁니다.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50명의 삶이 대한민국 ‘50세 여성’ 70만 명(2005년 기준)의 삶을 대표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독자들 가운데는 “왜 남자 50세는 하지 않느냐” “지금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힘든 사회다”고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번 기획은 중앙SUNDAY 편집자인 ‘마흔네 살 남자’ 이혁찬 기자가 낸 아이디어입니다. 가수 마돈나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아모탤러티(Amortality·젊은 라이프 스타일을 고집하며 노화를 거부하는 트렌드)’ 현상에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50세 누이들의 재발견’을 통해 한국의 아모탤러티 현상을 보고자 했던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기획을 통해 노화를 거부하는 삶이 아니라 세월까지 품어 안는 우리 50세 여성들의 아름다움·지혜·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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