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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기와 경기 부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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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정부.여당에서 경제를 살려보자는 논의가 부쩍 활발하다.

콜금리가 전격 인하됐고, 재정확대도 거론되고 있다. 부동산 규제도 경기를 살리는 쪽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런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지만, 일단 정부가 경제의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고 치유책을 찾아 나섰다는 점에서 시장은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느닷없이 "최근 금리 인하조치와 일부 부동산 정책을 놓고 정부가 경기부양으로 정책을 전환한다거나 부동산 정책에 큰 변화가 있는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어 "공무원들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달라"고 일침을 놓았다.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은 서둘러 진화작업에 나섰다. 최근 일련의 정부 정책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 과거부터 해오던 일이고, 금리인하는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가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란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런 조치들은 부양책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노 대통령은 "금리인하는 그동안의 재정지출이나 소비촉진을 위한 조세정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책일 뿐"이라며 "앞으로 원칙을 갖고 일관성있게 경제살리기를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쯤 되면 더 헷갈리기 시작한다. 재정지출의 확대나 소비촉진을 위한 조세정책을 합쳐서 보면 다 경기 부양책이다. '경기 부양'이란 말을 쓰든 안 쓰든 그렇다.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는 얼마 전 '건설경기 연착륙 대책'이란 걸 내놨다. 풀어서 말하면 다 죽어 가는 건설경기를 살리자는 이른바 '건설경기 활성화 대책'이다. 그런데도 '활성화'란 말을 못 쓰고 굳이 '연착륙'이란 새로운 단어를 썼다. 부양책이나 활성화라는 말을 애써 피하려 한다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 이유는 뭘까. 노 대통령은 원칙과 일관성을 항상 강조한다. 정부는 그동안 줄곧 경제살리기 정책을 원칙을 가지고 일관성있게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부양책이나 활성화란 말은 왠지 '그동안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됐거나 미흡했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뭔가 잘못됐으니까 정책을 바꾼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정책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거나 묵시적으로라도 용인하기 싫은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정책을 전환한다거나 부동산 정책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원칙과 일관성을 갖고 경제살리기를 해나가겠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문제는 어떤 표현을 쓰고 어떤 논리를 갖다대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경제를 어떻게 살리느냐다. 정부의 정책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경제살리기에 매진해 왔다면 경제는 진작에 살아났어야 옳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누가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눈앞에 놓인 현실일 뿐이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헤쳐나가는 해법은 그런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정부는 잘했는데 언론의 무지와 홍보 부족 때문에 경제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하는 일이 모두 잘못됐다거나, 오로지 정부의 잘못 때문에 경제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후에 해법을 찾는 것이 일의 순서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괜한 오해와 부정확한 시그널이 오가는 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김광기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