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사청문회 이번엔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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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정기국회 이래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인사청문회 대상 범위에서 한나라당이 이른바 빅4 (국정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에 대한 청문회 실시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 여당안을 수용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이로써 인사청문회 도입의 걸림돌이 제거돼 청문회는 열려야 마땅하나 이제 와서 여당이 딴소리를 하고 있다.

국회선출직 및 동의직 (同意職) 과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권력기관의 장 (長)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당초 '빅4' 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를 강력히 요구해온 시민단체 등과 함께 이의 관철을 다짐해온 야당이 이제 와서 느닷없이 이를 포기한 것은 시민단체와 개혁요구세력엔 일종의 배신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물론 야당은 우선 여당의 주장대로 국무총리.대법원장 등 국회 선출 및 임명동의직을 법제화한 후 정치개혁협상에서 '빅4'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대선공약을 수정해서까지 그것을 반대해온 상황에서 야당이 무슨 수로 나중에 이를 관철할 수 있을까를 고려하면 사실상 '빅4' 의 인사청문회 도입은 15대 국회에선 물건너 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는 그러나 상대가 있는 정치에서 야당이 타협적 자세를 보인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오는 23일 임기가 만료되는 윤관 (尹관) 대법원장을 비롯해 감사원장.헌법재판관.대법관 등 헌법기관 6개직에 대한 교체가 올 가을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우선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여당은 딴소리를 하고 있다.

이미 여야는 지난해 정기국회와 올초 임시국회에서 개혁입법 중 이 청문회조항이 반영되는 국회법개정안만 분리해 우선 처리하자고 합의한 바 있었고, 여당측은 야당이 '빅4' 만 포기하면 언제라도 청문회를 실시할 수 있다고 야당의 양보를 촉구해 왔다.

그런데 여당은 막상 대법원장 등의 교체가 임박해지자 다른 조건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신임 대법원장의 청문회 실시는 입법 기간이 촉박해 무리이므로 다른 개혁입법과 일괄타결하자고 국민회의는 주장하고 있다.

진짜 이유는 여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포함한 선거법개정과 이를 연계시키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야당이 양보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했다가 야당이 양보하니까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은 당당한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입법기간이 촉박하다는 것도 인사청문회를 하지 말자는 변명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여당은 별 명분도 없는 핑계를 버리고 이제야말로 金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한 인사청문회를 실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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