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09.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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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제11장 조우

진흙 투성이가 되어 뒹구는 안내인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다행히 범인들로부터 상해를 입은 흔적은 없었다.

"형이 총을 맞았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 그러나 안내인의 생각은 달랐다. 병원을 찾아가든 민가를 찾아가든 범인들이 빼앗아 타고 달아난 자동차부터 찾는 게 순서였다.

안내인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범행현장에서 국경성 쪽으로 1㎞도 못되는 지점의 잡목 숲속에서 탈취 당한 승용차를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점은 범인들이 타고 달아날 자동차를 먼저 대기시켜 놓았던 곳이기도 했다. 승용차를 찾아내긴 하였지만, 차량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타이어마다 펑크를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박봉환을 번갈아가며 들춰 업고 뛰는 수밖에 없었다. 사고를 당했던 지점으로부터 그들이 지나쳤던 항링즈 쪽으로 2㎞로 정도를 뛰어 병원 아닌 민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아간 민가의 주인은 조선족이었고, 그들은 총상을 민간요법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평생동안 병원 출입 한번 않고 살아온 사람들이었기에 마련해둔 상약 (常藥) 을 능숙하게 다룰줄 알았다.

흑설탕을 연탄불에 뿌려 나오는 연기로 상처를 쐬어 주었는데, 신통하게도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계란 껍질을 태운 가루를 참기름에 개어 붙인 다음, 호박잎을 말려서 가루로 만든 분말을 상처에 뿌리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무엇보다 박봉환이가 잘 참아내고 있었다. 옌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승욱에게 통기를 보내고 차량을 수소문해서 병원이 있는 훈춘으로 손씨와 함께 이송했다. 혼백이 나간 사람은 박봉환보다 오히려 손씨였다. 젖은 옷을 말려주려고 옷을 벗기려 들면 괴성을 내지르며 강아지 새끼처럼 방구석으로 기어들었다.

그리고 허공에다 시선을 떨군 채 시종 망연자실이었다.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 밀매까지 했던 사람의 배짱이었는데, 어떻게 저토록 무기력하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할 정도였다. 마을에 있는 조선족들은 편의를 제공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빗속을 뛰어다니며 헌신적으로 차량을 수배하고 병원까지 동행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을에 남게된 태호와 안내인은 남겨둔 승용차를 회수하기 위해 마을 장정들과 함께 다시 현장으로 달렸다. 승용차를 회수하여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해가 지고 저녁이 내가 내릴 무렵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세사람이 금품을 강탈당했던 그 지점은 양국의 치안 사각지대라 할 수 있었고, 일년에 서너번씩은 간헐적으로 행인들이 봉욕을 당하는 상습 사고지역이었다.

그러나 아직 한번도 강도들이 소탕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주로 밀무역꾼들이 이용하는 잠행로이기 때문에 금품을 강탈당하고 상해를 입는 불상사를 겪어도 중국의 공안당국에 신고된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사람을 쏴죽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태호가 지긋지긋한 현장에서 좀처럼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범인들의 근거지와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또다른 위기를 겪을 망정 강탈당한 금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도도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강도사건의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다는 사람들도 범인들의 정체는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농사꾼들이어서 일찍이 변경의 밀무역과는 민감한 접촉이나 인연을 두고 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남의 일에 불과했다. 남의 일에 무관심한 것은 중국인들 특유의 전통적인 의식이기도 했지만, 불과 2㎞ 남짓한 곳에서 상습적으로 벌어지는 흉포한 강도 사건조차 남의 일로 치부하고 태평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미련하다기보다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태호의 속내를 알아채고는 아예 그 비슷한 생각도 품지 말라고 극구 만류하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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