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보물창고 『유의어 대사전』 표제어 10만 단어 총 7권에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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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 시인의 에피소드 하나. 그의 작품 ‘김치’ 중 “김치는/맵고 짠 세월 속에서/적당히 삭혀야만/제 맛이 든다”는 대목이 있다. 1989년 발표 당시 ‘삭혀야만’은 ‘썩혀야만’이었다. ‘삭히다’라는 말을 시인이 떠올리지 못했던 것. 나중에 한 지인이 ‘썩히다’ 대신 ‘삭히다’를 제안, 시구를 수정했다. 시인은 “이 책 같은 유의어 사전이 한 권 있었다면 창작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이 책은 9일 한글날을 맞아 나온 『넓은 풀이 우리말 유의어 대사전』(도서출판 낱말·사진)이다. 총 7권, 6625쪽 규모다.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와 ㈜낱말 어휘처리연구소가 공동 편찬했다.

이 사전은 우리말의 ‘보물 창고’에 해당한다. 표제어 10만 단어의 유의어(비슷한말)를 망라했다. 1차 유의어 28만개, 2차 유의어 200만개를 수록했다. 각 단어의 반대말·방언·외래말·높임말 등도 덧붙였다. 한국어의 의미망(네트워크)을 구축한 셈이다.

예컨대 명사 ‘힘’을 보자. 우선 1차 유의어로 능력·권리·재주·권력·기세·세력·강세 등 45개 단어가 제시된다. 이어 단어 별로 2차 유의어(기세의 경우 바람·서슬·기·형세 등)가 소개된다.

이 사전에는 남다른 형제애가 담겨있다. 2005년 타계한 어휘학자 김광해(당시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씨가 오랜 세월 준비해온 유작을 그의 동생 기형(기업 컨설턴트)씨가 사재를 들여 4년 만에 완성했다. 또한 김 교수 은사인 심재기 교수(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와 그의 제자인 숙명여대 문금현, 성균관대 노명희, 홍익대 이선영 교수도 교열 감수에 동참했다.

서울대 민현식 국어교육연구소장은 “우리도 이제 미국·일본 등에 능가하는 유의어 대사전을 갖게 됐다”며 “저술가는 물론 일반인의 언어생활이 한층 풍요롭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은 온라인(www.natmal.com)에서도 무료 서비스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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