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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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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강력한 후보들을 제치고 예상 밖의 동유럽권 작가로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헤르타 뮐러. 여성으로서는 12번째 노벨문학상 메달을 움켜쥔 그는 강력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잊지못할 감동을 주는 문장가로 평가받아 왔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노벨문학상은 루마니아 태생의 독일 시인 겸 소설가 헤르타 뮐러(56)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수상자인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까지 최근 15년간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 출신들이 노벨문학상을 휩쓸어 올해에는 비유럽권에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스웨덴 한림원은 다시 한번 유럽 작가를 선택했다. 2007년 영국의 도리스 레싱 이후 유럽 작가의 3년 연속 수상이고 독일 작가로는 10번째, 여성 작가로는 12번째 수상이다. 2002년부터 유력 후보로 거론돼 온 고은 시인(76)은 올해도 아쉬움을 삼켰다.

◆소수민족의 딸, 소수자의 시선=뮐러는 세르비아-헝가리 국경에 위치한 니츠키도르프에서 ‘루마니아-독일계 소수민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문화적 전통에서 성장했다. 1980년대 독일 독자들에게 루마니아에 사는 독일계 소수민족의 실체를 알려 이들의 정체성과 민족적 흔적에 관심을 끌게 한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정희 청주대 독문학과 교수는 “뮐러는 부모 세대의 고통과 소수자의 정치 의식을 끈질기게 고민해 온 작가”라며 “세계문학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 온 것이 평가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으로는 데뷔작인 동시에 최고 문제작으로 꼽히는『저지대』 외에 『외다리 여행자들』(1989), 『악마는 거울 속에 앉아 있다』(91), 『여우가 그때 벌써 사냥꾼이었다』(92), 『오늘 내가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97), 『숨쉬는 그네』(2009) 등이 있다. 유럽의 주요 문학상인 클라이스트상(94), 프란츠 카프카상(99), 베를린 문학상(2005)을 잇따라 받았으며 2009년 하이네협회 명예회원에 올랐다. 국내 번역된 단행본은 없고, 2001년 민음사에서 나온 성인용 그림책인 『책그림책』에 산문시 ‘100개의 옥수수알’이 소개돼 있다.

◆반체제 성향의 작품 세계=뮐러는 태생부터 당대의 정치 상황과 얽혀 있었다. 농부인 그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친위대로 끌려 갔었고, 어머니는 1945년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보내져 5년간 생활했다. 뮐러는 73년부터 76년까지 티미소아라 대학에서 독일문학과 루마니아문학을 공부했다. 학창시절 그는 차우세스쿠 독재에 반대하고 언론 자유를 부르짖는 반체제 성향의 젊은 작가 그룹 ‘악티온스그루페 바낫(Aktionsgruppe Banat)’에 관여했다. 77년 엔지니어링 회사의 번역자로 취업했으나 공산당 정권의 비밀경찰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년 만에 해고당한다. 이후 유치원 교사, 독일어 개인 교사 등을 거쳐 87년 소설가인 남편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독일로 망명해 베를린에 정착한 후 작품활동을 해왔다.

이런 반체제 성향은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82년 출간한 데뷔작인 소설집 『저지대』는 루마니아 내 독일어 사용 마을의 황폐함을 다뤄 루마니아 공산정권의 검열에 즉각 걸렸으나 84년 독일에서 무삭제판이 출간돼 인기를 얻었다. 결국 그의 책은 루마니아 자국 내에서는 출간이 금지되기에 이른다.

페터 엥글룬트 한림원 사무총장은 “뮐러의 작품은 반 페이지만 읽어도 단번에 그녀의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힘과 아주 독특한 문체를 갖고 있다”고 평했다. “이야기도 풍부하다. 그것은 루마니아의 반체제 인사로 살아온 삶의 배경에서 나온 것인 동시에 고국에서의 ‘이방인’, 정치체제하에서의 이방인, 언어에서의 이방인, 가족에서의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고 말했다.

신준봉·강혜란·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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