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세풍수사…질질 끌어 실익없다 정치적 종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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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권이 세풍 (稅風) 수사를 사실상 중지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법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이 있다.

우선은 수사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주범격인 이석희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이 미국에서 버티고 들어오지 않고 있다.

현 시점에서 수사 확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은 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이 세풍 자금을 빼돌렸다는 유용 의혹 부분. 그마저 수사하기에는 법적 문제가 있다는 것. 사정당국 관계자는 31일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풍 자금도 한나라당의 돈이다. 그 돈을 개인적으로 쓴 것은 횡령인데, 횡령은 피해자 (한나라당) 고소.고발이 필요한데 그게 없다. 사법처리가 곤란하다. " 결국 서상목 (徐相穆) 의원만 남는다.

그러나 이런 것이 세풍수사 매듭의 모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정치적 판단과 고려가 깔렸을 것" 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지난 임시국회 때 한나라당 이부영 (李富榮) 총무가 박상천 (朴相千) 국민회의 총무에게 "세풍 수사를 끝내주면 특검제나 추경안 처리를 순조롭게 해주겠다" 는 이면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종결을 놓고 빅딜설이 나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여권은 정기국회 (9월 10일 개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정치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선 대야 (對野) 관계 복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야당을 압박하고 여론을 이끄는 '카드' 로서 세풍의 약효가 떨어졌다는 내부 지적도 부담이었다.

그런 만큼 세풍사건을 덮어버리고, 대국민 사과 등 상응한 조치를 한나라당측에 요구하는 것이 "도덕적 압박을 가하는 효과가 있다" 는 게 여권의 기대다.

수사 종결 방침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리된 것은 그런 복잡한 배경 때문이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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