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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칼럼] 정당개혁의 핵은 민주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내년 16대 총선거에 대비한 여야 정당들의 새 단장 (丹粧) 작업이 한창이다.

새 피 (?) 를 끌어들이고, 문패를 새로 달고, 아예 새 집을 짓겠다고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중요한 선거 때면 국민들의 눈을 현란케 하는 정당들의 신장개업이 상례화되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 3金시대 - 지역당구조가 정착화된 분수령은 87년 대통령선거였다.

그때까진 여야 정당은 그런 대로 전국정당구조였다.

집권당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록 내부 결속이 취약하고 내분이 만성화돼 있던 야당 역시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전국정당이었다.

그것이 8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집권 민주정의당과 YS의 통일민주당, DJ의 평화민주당, JP의 신민주공화당으로 분화되면서 질적으로 달라졌다.

대통령선거와 다음해 13대 총선거를 겪으면서 각기 특정지역을 지지기반으로 한 정당체제로 고착된 것이다.

집권 민정당은 90년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과 민주자유당으로 통합해 92년 14대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치렀고,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하면서 신한국당으로 문패를 바꿔 96년 15대 총선에 나섰다.

그러나 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야권 일부를 끌어들이면서 다시 문패를 한나라당으로 바꿔 달았다.

3당 통합으로 거의 유일 야당으로 남은 DJ의 평화민주당은 신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가 91년 3당통합에 반대했던 통일민주당의 잔여부대와 민주당으로 통합해 92년 14대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치렀다.

대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했던 DJ가 95년 정계에 복귀하면서 민주당의 DJ세력과 재야 지지세력이 새정치국민회의를 결성, 다음해 15대 총선과 97년 대선에 나섰다.

3당 통합으로 민자당의 한 계파가 된 JP의 신민주공화당은 95년 JP가 YS와 결별하면서 자유민주연합이란 간판으로 그해 지방선거와 다음해 15대 총선을 거치면서 제3당의 위상을 회복했다.

중요 선거 때마다 정당들의 이합집산과 문패 바꿔달기가 거듭되다 보니 지금 여.야당이 신당을 만드느니, 새 사람을 끌어들이느니, 문패를 바꿔 다느니 하며 부산을 떨어도 국민들의 반응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그러나 실은 21세기, 새 밀레니엄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정치의 일대 개혁과 혁신이 절박한 시점이다.

냉소와 무관심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화.전문화.세계화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만들어내려는지, 깨끗한 정치.비전있는 정치.창출하는 정치로 가려는지, 그에 맞는 인물들을 모으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새 시대에는 무엇보다 민주적 리더십이 열쇠다.

우리 정당들은 과거에도 새 치장을 할 때마다 많은 새 인물들을 정치에 끌어들였다.

자기 분야에서 내로라 하던 사람들도, 또 사회에서 널리 존경받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정치에 입문해서는 정치체질을 바꾸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한낱 부품으로 조직 속에 매몰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다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장준하 (張俊河) 씨 같은 분도 정치 입문은 실패로 끝났다.

오죽하면 정치를 인재를 삼키는 블랙홀이라고 할까. 우리나라 정당들의 공직선거 후보공천 결정 시스템은 철저한 하향식이다.

그래도 전엔 정당에 중간보스들이 있어 공천권 집중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유신체제 이후 집권당에 이어 87년 3金정당 출범 후 야당에마저 1인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공천권은 지도자 1인에게 집중됐다.

모든 정치인의 정치생명이 보스 한 사람 손에 들어 있는 꼴이다.

그러니 어느 당원도 자유롭지 못하고 보스 얼굴만 바라보게 된다.

정치입문 전에는 일가견이 뚜렷하던 인물도 당지도부가 정해 놓은 규격 속의 평균인이 돼가고 만다.

깨끗한 새 피로 영입됐던 사람들도 다시 당의 새 단장이 필요할 때는 어느덧 헌 피로 전락한 스스로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인재 낭비의 반복을 막으려면 이들이 당지도부에 기대지 않고 실력으로 자생할 수 있는 정당체제가 돼야 한다.

지금같이 한 보스에 의해 하향적으로 결정되는 공천결정 시스템이 당원들에 의해 민주적.상향적으로 결정되는 체제로 바뀌는 게 필요하다.

이렇게 정당이 민주화돼야 정치인들이 보스만 바라보지 않고 국민을 의식하는 정치를 하게 된다.

21세기, 새 밀레니엄을 이끌 정당은 밑으로부터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정당이어야 한다.

과연 정당이 개혁을 하고 새로워지느냐는 영입하는 사람 못지 않게 그 체질이 얼마나 민주화되느냐로 판가름 난다.

성병욱 본사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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