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불법자금 돈세탁 수사…미.러 대선 '뇌관'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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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뉴욕은행을 통해 세탁된 러시아의 불법자금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간 것일까. 미 언론은 러시아 마피아가 아니라 보리스 옐친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이거나 러시아에 대한 국제통화기금 (IMF) 의 차관을 횡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시아 정가에선 이같은 미 언론들의 보도가 러시아 정.재계를 뒤흔들려는 음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 미국의 정치음모설 = 러시아 언론들은 이번 사건의 수사결과가 앞으로 ▶러시아 대통령 ▶미 대통령 ▶IMF 총재 등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 자리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미 정보.수사기관이 러시아 대선후보들을 협박하는 한편 미 민주당 정권에 부담을 주는 카드로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이번 돈세탁 사건의 배후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대선후보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측근인 세묜 모길레비치의 연루설로 곤욕을 치르는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은 개혁적.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에 미국의 보수세력들이 특히 껄끄럽게 생각하는 후보로 알려져 있다.

또 미 대통령과 IMF총재는 IMF의 러시아 지원금을 제대로 관리할 책임이 있다.

만약 사후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 지난 5년간 미국의 대러시아 지원정책을 총지휘해왔던 앨 고어 부통령은 오는 대선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 정치 비자금설 = 이탈리아 일간지 등은 최근 옐친 대통령의 둘쨋딸 타티야나 디야첸코와 대통령행정실이 국제범죄조직의 돈세탁을 간접적으로 도왔으며, 그 대가로 챙긴 뒷돈을 개인용도와 정치자금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해 8월 루블화의 평가절하가 임박했다는 내부 정보를 사전 입수한 상당수의 관리들이 정부 보유 채권을 매각, 거액의 현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사받고 있는 미하일 호도로코프스키 전 메나텝 은행 (지난해 러시아 금융위기 때 파산) 회장이 최근 폭로한 내용이다.

현재 활동 중인 러시아 개혁파 정치인들의 자금 일부가 이때 불법세탁된 돈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 IMF자금 유용설 = IMF는 이미 러시아의 IMF지원금 유용 여부를 자체조사하고 있다.

미국의 짐 리치 하원 재경위원장은 27일 돈세탁 등 불법행위에 대한 예방조치가 시행될 때까지 러시아에 대한 차관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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