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혁, 공기업부터 모범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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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우사태와 재벌개혁 등 굵직한 현안에 가려 공공부문 개혁이 다시 휘청대고 있다는 중앙일보의 보도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해당 공기업들의 기득권옹호와 노조들의 반발로 추진일정이 갈수록 늦춰지고, 낙하산인사 등 당국의 입김행사는 여전해 인사권독립 또한 요원하다고 한다.

조폐공사의 '파업유도' 사건 이후 상당수 노조들은 민영화 자체에 반발함은 물론 과다한 퇴직금 및 복리후생비를 축소하는 경영개혁지침도 곳곳에서 흐지부지돼 공기업 개혁이 원위치로 되돌아가는 듯한 인상마저 갖게 한다.

더구나 내년 총선을 의식해 공기업 '달래기' 에 정치권이 적극 나서고, 그 결과로 삭감됐던 급여 가운데 절반을 하반기 중에 되찾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는 모양이다.

이러고서 '작고 효율적인 정부' 를 아무리 외쳐본들 누가 믿겠는가.

국가적 개혁은 공공부문부터 솔선해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지금까지도 민간부문의 구조조정에 비해 속도가 더디고 강도 (强度)가 약하다는 비판은 그치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의 성과도 만만치 않다.

인력조정은 1백% 달성했고 지분매각과 자회사정리.통폐합 등 성과도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당국 스스로 개혁성과를 '60점' 으로 매길 정도로 진도가 지지부진하고, 특히 인력은 줄였지만 체질이 바뀌지 않고 있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대우그룹을 제외한 4대그룹의 구조조정은 90%가 완료됐다는 것이 정부의 평가다.

민간기업들은 가혹할 정도로 몰아붙이면서도 정작 정부 자신은 '변한 것이 없다' 는 게 될 말인가.

지난 5월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몇개 부처를 신설하는 '공룡정부' 가 탄생한 이후 공기업들에 구조조정을 강요할 명분이 약해졌다고 하니 어처구니없는 정부 스스로의 자업자득이다.

경영혁신을 점검하는 공기업구조조정 점검회의가 지난해 이후 단 세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공공부문 개혁의 사후관리가 얼마나 미적지근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죽하면 감사원이 공공부문 개혁 성과를 중점감사하겠다고 나서겠는가.

공기업은 정부의 일부이기 때문에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럴수록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의지가 없이는 과감한 개혁도, 민영화도 불가능하다.

공기업 민영화의 부진은 그 방향 자체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정부지분을 파는 것만이 민영화는 아니다.

공기업의 특성에 따라 산업정책 차원에서 체계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개혁실태와 문제점을 범정부 차원에서 재점검하는 사후관리체계의 뒷받침도 갖춰야 한다.

공공노조들 또한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민간부문 노조들도 못지 않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 않은가.

핵심역량 위주의 경쟁력과 자율.책임경영체제는 공기업 등 정부부문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당국은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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