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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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미국식 영어 표현에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란 말이 있다. 좁은 방에 덩치 큰 코끼리가 한 마리 들어와 있다고 상상해 보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명백히 존재하는 문제임에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치 아픈 난제라는 의미다. 요즘 한국으로 치면 세종시 문제가 방 안의 코끼리쯤 되겠다.

지금 백악관 웨스트윙에는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의 코끼리가 동시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오벌 오피스에 한 마리, 루스벨트 룸에 한 마리, 캐비닛 룸에도 한 마리…. 다들 문제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해볼 엄두를 못 내는 난공불락의 골칫거리들이 한둘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의료보험 개혁은 야당인 공화당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고,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법안은 상원에서 계속 낮잠을 자고 있다. 갈수록 꼬이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바마에게 진퇴양난의 수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란과 북한 핵도 한 쌍의 코끼리다.

취임 초 80%까지 치솟았던 오바마의 인기는 8개월 만에 40%대로 주저앉았다. 매력은 보일 만큼 보여줬으니 이제 실력을 보여달라고 아우성이지만 뭐 하나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일이 없다. 그러니 ‘오바마의 위기’란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오바마의 위기라기보다는 미국 정치의 위기,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가운데서 만나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교환적 거래행위다. 중간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왼쪽으로, 왼쪽에 있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같이 움직여줘야 한다. 어느 한 쪽만 움직여서는 거래가 성립할 수 없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정치의 모습이지만 지금 미국 정치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오바마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전국민 의료보험제 도입을 위해 과거 공화당이 제시했던 안을 대폭 수용한 타협안을 만들었지만 공화당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은 미래의 엄청난 성장동력이 될 저이산화탄소 녹색산업 육성의 전제조건임에도 기업에 대한 규제라는 이유로 공화당은 이를 싸늘하게 외면하고 있다. 대신 오바마를 ‘사회주의자’ ‘히틀러’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는 일부 극우파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오바마는 중간지점으로 먼저 가서 제발 좀 와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지만 보수 진영은 팔짱을 낀 채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전통은 미국을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릴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면서도 애국심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를 찾아내는 능력에서 미국은 탁월함을 보였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턴가 그 전통에 금이 가기 시작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는 완전히 깨져버렸다.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미국 정치의 극단적 당파주의로 귀결됐고, 이는 묘하게도 미국의 국력이 기울기 시작한 시점과 시기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오바마는 미국 정치의 위대한 전통을 되살려 보겠다고 초당주의를 외치며 애를 쓰고 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참다 못했는지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얼마 전 칼럼에서 “중국의 일당 독재보다 나쁜 것이 미국의 일당 민주주의”라고 개탄했다. 지금의 미국처럼 공화당은 발을 빼고, 민주당만 발을 동동 구르는 일당 민주주의보다는 내부 경쟁을 거쳐 올라온 뛰어난 지도자들이 나라를 끌고 가는 중국식 일당 독재가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해서 일사불란하게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중국과 비교할 때 당파주의라는 족쇄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미국의 상황이 너무나 한심하고 안타까워 보일 만하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가장 중요한 거버넌스(국정운영 체제) 경쟁에서 미국은 중국에 뒤지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남 걱정할 일이 아니다. 당장 우리의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을 내세우며 친(親)서민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알맹이 없는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오른쪽에서 중간을 향해 움직이는 자세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니다. ‘반(反)이명박’의 기치 아래 무조건 정부의 발목을 잡고, 가운데를 향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면 진보 진영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침몰하고 있는 유럽의 좌파 정당들이 그 해답이다. 승부는 가운데서 난다. 왼쪽도 아니고, 오른쪽도 아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