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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민신뢰받는 복지정책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할 때가 잘해주고도 욕먹는 경우다.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기점으로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복지정책을 놓고 과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일치할지 궁금하다.

게다가 수혜대상에서 소외된 계층이나 업종의 사람들은 내가 낸 세금을 정부가 왜 이런 식으로 쓰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정책의 내용이 좋은 것과, 그 정책이 먹혀들게끔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소득과 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복지정책의 경우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의 합리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 정책성공의 기본조건이다.

흔히들 정치논리가 경제를 망친다하지만 민주사회에서 정치를 무시한 경제가 존립할 수 있을까. 정부를 심판하고 정권을 바꾸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혼재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만장일치가 힘들기 때문에 다수결의 선택이 불가피하다.

정당이 선거를 의식하고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것이 왜 나쁜가.

묵묵히 정부정책을 평가하고 투표로써 정권을 선택하는 정치논리는 우리가 지향할 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님 봐주세요" 식으로 정부에 매달리는 이익집단의 제몫찾기 경쟁이나,가진자의 기득권을 십분 활용해 정부와 타협하려는 부패한 사회현실이 투영된 정치논리다.

김대중 (金大中) 정부가 경제위기극복의 1년 반을 뒤로 하고 분배정의와 사회안정에 눈을 돌린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잘한 일이다.

첫째, 형평한 분배는 지속적 성장의 기틀이 된다.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형평을 이율배반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성장의 과실분배가 공평하지 않아 계층간의 갈등과 사회불안정이 증폭되면 이익집단의 정치논리에 휩싸여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임시방편적 조세.지출정책이 채택되기 쉽다.

둘째, 김대중 정부가 중산.서민계층을 기반으로 하는 진보정당의 기치를 내세운 것은 정당이 정강과 정책으로 승부하는 바람직한 정치논리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잘한 일이다.

민주주의나 시장경제와 같은 보편적 가치는 정강으로 어울리지 않는다.정치권은 다수의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책정당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야당도 지엽적인 논쟁에 매달리지 말고 나름대로의 색깔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중산.서민계층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현 정부 복지정책의 문제점은 그 내용보다는 집권정당의 진정한 의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경제위기로 소득분배가 악화된 것은 누구나 느끼지만 부자들 세금 좀 더 내게 한다고 빈부격차가 해소될 일이 아니다.

계층간 소득격차를 줄이는 문제는 세금을 내기 전 소득분포 자체의 변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는 1차적으로는 구조적인 복지제도의 변화, 궁극적으로는 중산.서민계층이 보다 나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여건 조성에서 찾아야 한다.

국민기초생활 보장, 저소득층 학비지원, 농어민 대책 등 개별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는 정책들이 과연 국민들에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복지대책으로 비쳐질지, 선심정책으로 비하될지는 집권층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약 6조5천억원에 달한다는 소요재원이 1회성인지, 근본적 제도변화에 수반되는 지속되는 지출수요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재원조달이 세수증가나 적자재정을 통할 것인지, 정부지출의 다른 부분을 줄인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정부대책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측면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도 계층.직종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세부담의 불공평성을 제거하기 위한 세제개혁의 큰 틀에서 보아야지 이를 무슨 빈부격차해소의 수단처럼 내세우는 착각논리에 떼밀려 오락가락해서는 안된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사람을 더 쓰게 만들어야지 고용효과가 불분명한 유인제공에 의존하면 안된다.

벤처 하면 세금 깎아준다는 약속보다 벤처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소기업인들에게 환영받을 것이다.

같은 정책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사는 쪽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다.

집권정당과 야당은 서로를 겨냥하지 말고 국민을 향해 신뢰도를 쌓아야 할 것이다.

김주성 이화여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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