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탄생 1백주년 맞아 시선집 '부에노스…'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20세기 현대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1899~1986)가 오는 24일 탄생 1백주년을 맞는다.

블라디미르 나브코프 (1899~1977).어네스트 헤밍웨이 (1899~1961).가와바타 야스나리 (1899~1972) 등 그와 동갑내기 문학가들의 1백주년이 국내 문학계에서 별 조명을 받지 못한 데 비해 보르헤스는 조촐하나마 생일상을 받는다.

지난 94년 보르헤스 소설전집을 출간한 민음사가 때맞춰 펴내는 시선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우석균 옮김)가 그것이다.

서유럽 중심의 세계사에서 '변방' 으로 분류되는 아르헨티나 출신인 보르헤스는 할머니가 영국계였던 탓에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고, 시력이 약한 아버지의 요양길을 따라 스위스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거기에다 도서관 사서를 거쳐 국립도서관장이 된 경력에서 짐작하듯, 서양 고전을 풍부하게 섭취했던 보르헤스는 이를 곳곳에 녹여내면서도 전반적인 서술기법에서는 서양문학사의 전통적 방식을 해체, 새로운 문학을 내놓았다.

허구적 인용문의 도입, 환상적인 줄거리 전개 등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의 원조가 바로 보르헤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픽션들' '알렙' 등 소설집이지만, 그의 문학적 출발점은 시였다.

특히 50대 후반 시력을 상실한 후로는 한층 시창작에 몰두, 모두 16권의 시집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보르헤스의 시를 국내에 처음으로 본격 소개하는 이번 시선집의 제목 '부에노스 아이레스…' 는 본래 1923년 펴낸 첫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도서관.모래시계.체스.거울.호랑이.칼 등 이번 시선집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보르헤스의 단편에 곧잘 등장했던 것들. 여기에 왕년의 애인들에 대한 헌사를 비롯, 개인사를 엿보게 하는 귀절이 적지않은 것도 보르헤스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

보르헤스는 평생 두 번 결혼했다.

젊은 시절 친구였다가 30년만에 해후, 68세에 결혼식을 올린 첫부인과는 3년만에 헤어졌고, 두번째는 간암으로 죽기 두 달 전 일본계 비서와의 결혼. 정치적으로는 페론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도서관장직에서 쫓겨나 강연으로 생계를 이은 이력이 있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