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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도 진화의 과정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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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왔는가. 최근 미국 캔자스주가 초.중.고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가운데 생물진화에 대한 한 가설이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79년 처음으로 제기된 '가이아' 가설이 그 것.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 이름을 본 뜬 이 가설은 영국출신으로 미항공우주국 (NASA)에서도 일했던 제임스 러브록 박사가 내놓은 것. 생물과 환경은 서로 의존하며 진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생물이 환경에 일방적으로 순응해 진화해온 부속적 존재가 아니라는 뜻.

최근 가이아 가설은 미국 MIT의 정규교과목에서도 소개되는가 하면 영국은 물론 호주.뉴질랜드 등에서 관련 세미나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최근 급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지구촌의 기후 때문. MIT의 모린 레이모교수는 "가이아 가설에 따르면 상호진화의 한 주체인 인간이 다른 주체인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며 "그 결과가 인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거리" 라고 말했다.

가이아 가설의 과학적 근거는 우주연구에서 비롯됐다. 러브록 박사는 NASA 태양계조사에 참여하면서 지구의 대기 조성이 주변 행성과는 크게 다른 점을 발견했다.

금성과 화성은 가장 단적인 예. 두 행성 모두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95%를 차지했다. 이는 지구의 0.03%와는 크게 다른 것. 러브록 박사는 "원시 지구의 이산화탄소 비율은 금성.화성과 비슷했다.

그러나 지구가 생명체를 배태하면서 이 생명체가 지구의 대기조성을 바꾼 것" 이라고 설명했다. 광합성을 하는 세균.조류 (藻類)가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뿜어 지구 대기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체가 자연에 순응하지만 않고 '능동적' 으로 자신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 땅.대기와 생명체는 이렇게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가이아가설의 결론이다.

가이아 가설은 생물체에 대한 고정관념에도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아메리카 삼나무가 생물이냐 아니냐에 대한 '가이아학파' 의 물음이 단적인 예.

최고 수십m에 달하는 이 나무는 물론 '살아있다' 는 것이 정답. 하지만 가이아 가설의 답은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이 거대한 나무의 99% 가량은 셀룰로오스 덩어리. 즉 죽어있는 통나무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이 99%의 죽은 부분이 없다면 광합성을 하는 잎사귀나 도관 역시 온전할 수 없다.

가이아 학자들은 "아메리카 삼나무의 죽은 부분이 바로 지구환경이고 살아있는 부분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집단" 이라며 "둘은 별개가 아니라 커다랗게 살아가는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해야한다" 고 말한다.

매사추세츠대학의 린 마굴리스 교수는 "가이아 가설은 인간을 특별한 존재라고 가정하지 않는다.

인간에 의해 지구온난화가 더욱 심해지면 사람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물계 전체는 나름대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 또 환경을 자신에 유리한 상태로 만들어갈 것" 이라고 말한다.

러브록 박사의 이산화탄소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온난화는 지구 전체를 마치 공룡이 살았던 때처럼 열대우림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공룡 시대의 기후는 공룡이나 다른 생물들에게는 적합했지만 사람이 진화할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가이아파 학자들은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며 환경을 살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바꾸는 것도 사람 (생물) 의 몫임을 일깨운다.

현재 가이아 가설을 이론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관련학자들 간에 토론이 한창이다. 이론으로 인정된다면 생물 진화론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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