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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이호림 오비맥주 사장 “갑옷 입었더니 직원들 말을 않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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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18일 대전 컨벤션센터. 이호림(49·사진) 사장을 비롯한 오비맥주 임직원 1600여 명이 모두 모였다. 이날은 오비맥주가 새로운 다짐을 하는 날. 벨기에 인베브에서 미국계 사모펀드 KKR(Kohlberg Kravis Roberts)로 주인이 바뀌면서다. 이 사장은 “메가 브랜드 전략을 강화하겠다”고 외쳤다. 지난해 천연 레몬과즙이 함유된 카스레몬, 올해 19∼24세를 위한 카스2X를 출시한 것처럼 오비 대표주자인 카스의 브랜드 파워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오비맥주와 그는 공통점이 있다. 변화무쌍함이 그렇고, 국내외를 넘나든 것이 그렇다. 오비맥주 첫 소유주는 두산. 오비맥주는 두산의 상징이었다. 두산이 이 회사를 인베브(당시 인터브루)에 매각한 때는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이었다. 올해 오비는 또 한번의 격랑을 거쳤다. 인베브가 자금 확보를 위해 5월 KKR에 판 것. 이번엔 좀 독특하다. KKR은 일반기업이 아니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펀드회사다. 이 사장 경력도 변신을 거듭했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 가 중·고교와 대학을 나왔다. 이후 거친 회사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펩시→피자헛→월마트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 속옷 만드는 쌍방울로 유명한 토종기업 트라이브랜즈에서도 일했다. 국내외 기업을 넘나드는 이력을 쌓은 셈이다.

KKR에 인수된 뒤에도 오비맥주 사장을 계속 맡게 된 그를 만났다. “‘갑옷’을 입고 있었더니 직원들이 말을 안 하더라”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2년 전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 ‘연륜이 오랜 기업의 습성’을 보고 느낀 점이다. 회사 내 보이지 않는 벽을 ‘갑옷’에 비유한 것이다. 열린 기업문화가 높은 생산성을 이끌어낸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 그래서 사장실부터 없앴다. 직원 자리 칸막이도 치웠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결재라인이 줄어 의사결정이 빨라졌다. 경영혁신에 카스의 저력(지난해, 전년 대비 12% 매출 상승)이 힘을 보탰을까. 오비맥주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2007년 39.8%이던 맥주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41.1%, 올 7월 현재 43.1%로 쑥쑥 올랐다.

이 사장은 미 밴더빌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TI 디자인엔지니어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85년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이 인생의 분수령이 됐다. 한국국방연구원 탱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어릴 적 한국을 떠났지만 고국에 기여할 수 있어 흐뭇했다”고 술회했다. 소비재 산업에 뛰어든 건 92년 펩시부터다. 멕시코 지사를 거치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96년 피자헛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이어 2000년 최고경영자(CEO)가 된다. 이후 월마트코리아 최고운영책임자(COO)와 트라이브랜즈 CEO를 지냈다.

-‘벽 트기 경영학’이 지론인데.

“임직원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생각으로 사무실을 개조했다. 매달 한 번 칭찬의 밤 행사를 해 스스럼없이 의사소통한다. 지난달 인기 댄스그룹 2NE1의 산다라 박 새 광고도 그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사모펀드가 주인이 됐다.

“우리 정부는 KKR이 한국에 투자하는 걸 보고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사모펀드는 기업 가치를 키우는 선수다. 젊고 분석적으로 생각한다. 주주와 경영진이 대화를 나누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향후 회사 운영은.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것, 그게 내 경영방식이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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