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보통국가'로 가는 일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은 일본연구의 고전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사정이 허락하면 일본은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에서 자기의 위치를 구할 것이다. "

지난해 8월 16일 아사히 (朝日) 신문은 사설에서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일본 국민들 사이에 '국가 규모의 새 의지처 (依支處)' 를 원하는 초조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반세기전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위험이 싹트고 있다고 경계했다.

아사히신문의 논조는 베네딕트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일본인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당당' 해지고 있다.

종래의 역사인식을 '자학사관 (自虐史觀)' 이라고 비판하면서 지금까지의 비정상국가에서 정상국가로 탈바꿈하라고 요구한다.

연립내각의 한 축 (軸) 인 자유당을 이끄는 오자와 이치로 (小澤一郎) 의 '보통국가론' 이다.

오자와는 일본이 정식 군대를 가져야 하며 전쟁을 포기한 평화헌법을 개정해 유엔평화유지군 (PKF)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최근 정치상황을 보면 보통국가화가 급속히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 (新) 미.일 방위협력지침 (가이드라인) 이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주변국까지 확대했다.

또 히노마루 (日の丸) 와 기미가요 (君が代) 를 국기.국가로 정한 법률이 9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戰犯) 들의 위패가 보관된 야스쿠니 (靖國) 신사의 국립묘지화가 추진중이다.

내년 1월부터는 평화헌법 개정 심의에 착수한다.

군사력 증강도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국방비를 지출해오고 있는 일본은 최근 전역미사일방위체제 (TMD) 구축, 정찰위성 발사, 공중 급유기와 경 (輕) 항공모함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이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더 없이 적절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아 일본은 더 이상 과거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과거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받았던 주변국들로부터 동의를 얻는 진실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일본은 반세기전의 비극을 냉정하게 되돌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