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과 과학] '삼년 가뭄에 살아도 석달 장마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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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해에 이어 올 여름의 연속적인 비 피해를 보면 '삼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달 장마에는 못산다' 는 속담이 실감난다. 옛 사람들도 가뭄보다는 장마의 피해가 훨씬 심하다는 사실을 체득했던 것.

이는 무엇보다 장마때 높은 습도가 주는 불쾌감이 가뭄때 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웠던 탓. 습도가 높다는 것은 공기중 물방울이 그만큼 많이 포함돼 있다는 말.

같은 온도라도 훨씬 더 많은 물방울이 몸에 부딪히면 그만큼 더 덥게 느껴지고 불쾌할 수 밖에 없다. 공기가 건조할 경우 강렬한 햇빛만 피할수 있다면 기온이 높더라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비가 잘 오지 않는 중동지역의 주민들이나 열대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흰천으로 온몸을 감싸는 방식으로 더위를 견딜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보통 우리가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는 섭씨18도 부터 신체표면에서 수분 (땀) 이 분비된다.

그러나 이때는 수분이 바로 증발해버리기 때문에 그리 더운 줄 모른다. 그러나 수은주가 올라갈수록 수분의 분비량도 많아지는데 습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수분의 증발이 줄어들다가 마침내는 멈추고 만다.

이때 피부의 표면에 남게 되는 것이 바로 땀. 땀이 많이 나오면 체내의 염분이 땀으로 발산돼 뇌세포의 기능도 저하된다.

실제로 지난10년간 항공사고중 70%가량이 무덥고 습한 여름철에 발생했으며 이 기간중 인명피해자 4백명중 3백94명이 여름철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대기불안정으로 인한 돌발기상탓도 있겠지만 항공분야 종사자들의 집중력 저하와 과로 등 습하고 더운 날씨탓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다.

무더위와 습도의 관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32도, 습도가 96%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난다. 습도가 48%정도로 낮다면 섭씨 35도쯤은 돼야 땀이 나온다.

같은 이유로 섭씨 1백도가 훨씬 넘는 건식 사우나에서는 습도가 낮기 때문에 15분 넘게 참을 수 있지만 60도 정도인 스팀사우나에서는 5분 이상 버티기 힘들다.

장마후 높은 습도 탓에 각종 수인성 질환과 병충해가 활개치게 되는 것도 장마가 가뭄보다 더 무서웠던 이유중 하나로 보인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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