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라이언 킹'] 4. 이승엽 타자로 전업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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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내 왼팔로 우승팀 LG를 꺾고 싶다. " 94년 12월 28일. '왼손투수' 이승엽은 삼성 라이온즈와 공식 입단계약을 한 뒤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LG를 꺾고 싶다고 프로 입단 첫 소감을 밝혔다.

왼손투수인 자신이 앞장서 김재현.서용빈 등 왼손타자가 버티고 있는 LG를 이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양대와의 줄다리기 끝에 당시 고졸 최고대우였던 계약금 1억3천2백만원, 연봉 2천만원에 프로 유니폼을 입은 '새끼사자' 의 첫마디였다.

삼성은 곧바로 이승엽을 70년대 후반 한국야구를 대표했던 좌완 이선희의 대를 이을 기대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승엽은 95년 1월 1일 새해 첫날 서울삼성병원에 입원했다. 왼쪽 팔꿈치의 뼈조각 제거수술을 받기 위해서였고 3일 퇴원, 대구로 내려갔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 이승엽은 많은 생각을 했다. 대학생활이 힘겨울 것 같아 프로에 뛰어들긴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프로선배들은 한술 더 떴다.

일단 열살 가량 많은 나이차 때문에 고개를 똑바로 들 수 없었고,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선배들과의 경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물러날 수는 없었다. 수술부위가 회복되는 대로 볼을 잡고 피칭을 시작할 참이었다. 수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자신을 다그쳤다.

'외유내강' 의 성격은 이때 더 견고해졌다. "내손에 볼을 쥐게 되면 아무한테도 지지 않겠다" 며 투수의 꿈을 키워가던 이승엽은 1월 중순 그룹연수원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용득 감독과 박승호 코치로부터 날벼락같은 권유를 받았다. 우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랍게도 "너 투수 포기하고 타자 한번 해볼래?" 였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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