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 '인정사정…' 유머.비극 절묘하게 녹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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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지난 주말에 개봉된 이명세 (42) 감독의 새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개그맨 (89년) , '나의사랑 나의신부' (90년) '지독한 사랑' (97년) 등을 연출한 이 감독의 여섯번째 영화다.

장난기 어린 유머와 비극적 감성이 뒤섞인 이 영화는 특히 시각적 효과에 있어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어 '스타일스트' 로 일컬어져온 감독의 명성을 더욱 굳힐 전망이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 주말 전국 15만명이 이 영화를 찾았고 PC통신에 격찬을 쏟아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의 의견은 좀 다르다. 그들은 이 영화에 대해 '스타일 말고 또 뭐가 있는가' 라며 비판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감성이 있는 액션영화 '인정사정‥'

이 영화는 냉혹한으로 그려진 살인사건의 용의자 (안성기) 와 그를 추적하는 과격한 형사 (박중훈) 의 필사적인 승부를 그린 작품이다. 극중 형사 박중훈과 도망자 안성기가 탄광촌 빗속에서 벌이는 결투장면은 압권으로 거론되는 대목이다.

5백㎜ 망원렌즈를 이용해 촬영한 이 장면은 청회색의 독특한 색감에 빗줄기를 한올 한올 살려내고 두 사람의 강철같은 주먹이 오가는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냈다.

눈.바람.안개.낙엽.그림자 등으로 스크린에 불어넣은 감성, 얼굴에 발자국이 찍히는 등의 만화적인 유머도 높은 평가를 받은 요소다. 이감독의 전작들보다 페이소스가 강해졌다는 점도 이 영화의 장점으로 꼽힌다.

▶형식미만 있고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의 부재' 를 지적한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이 영화가 이감독 스타일의 정점이란 점을 인정한다" 면서도 "그러나 현란한 영화적 표현장치의 목적이 무엇이었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고 했다. 또 다른 평론가 김시무씨도 "형식미에만 치중한 대신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지향점이 애매모호해 아쉽다" 고 했다.

▶ "영화가 곧 메시지" - 이명세 감독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시각적 효과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영화란 과연 무엇인가" 하고 반문한다. "연극의 어떤 것도 아닌, 문학의 어떤 것도 아닌 '영화 그 자체' 를 찾고 싶었다" 는 그는 "가장 영상적인 것으로 관객과 대화하고 싶었다" 고 말했다. 회화와 만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그는 만화적인 묘사를 가리켜 '시각적 표현의 극대화' 라고 했다.

그는 "만화에서 되는게 왜 영화에선 안되는지를 스스로 묻고 했다. 나는 영화를 통해 시각적 표현의 극대화를 실험하고 싶었다" 면서 "영화는 그 자체가 메시지" 라고 주장한다.

▶완성되지 않은 이명세 감독론 (論)

영화평론가 김정룡씨는 그의 저서 '우리영화의 미학' 에서 이 감독의 작품들이 지닌 미덕을 '사소함에 대한 애정' 으로 요약했다. 그가 가진 장점은 분명 스타일뿐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상상과 몽상을 중시하는 그의 관점은 '현실도피주의' 로 평가 받는가 하면 인공적 조형미를 강조하는 그의 감각은 종종 '유치하고 조잡한 미학' 으로 격하되기도 했다.

이감독의 영화들은 대개 흥행에서 큰 재미를 못봤지만 소수의 매니어 팬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영화 '인정사정…' 은 이런 논란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우리는 지금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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