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송전탑·댐·학교통폐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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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전국 어디에서나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쳐 고압전선을 끌고 내달리는 살풍경한 송전탑의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산업사회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것과도 같은 흉물스런 철구조물은 도시의 주택가나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 명산대천.문화유적의 꼭대기를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들어서 국토공간을 분할한다.

경관훼손도 문제지만 자연파괴도 심각하다. 최근 유해논란이 일고 있는 전자파 공해를 포함해 시민생활의 안전과 유사시 안보에도 중대한 취약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뒤늦게 위험성을 알고 자기권리찾기에 눈을 뜬 지역주민.환경단체들이 곳곳에서 반대운동을 펴 장기 집단민원사태가 빚어지고 있지만 전력공급 확대를 위해 증설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뿐 정책수정의 기미는 없다.

과연 그럴까. 현재의 지상 고압송전망 방식은 전력원이 수력과 석탄으로 사실상 한정돼 전력생산지와 소비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 채택된 시스템이다.

지금은 대량소비처 부근에 발전설비를 배치하게 되고 따라서 과거와 같은 광역송전시스템은 제한적인 필요밖에 없게 됐다.

강릉에서 쓸 전기를 굳이 인천에서 생산해 고압송전망으로 보내는 식의 투자가 필요도, 경제성도 없게 된 것이다.

실제 한전에서는 새 정부 출범후 전임 장영식 (張榮植) 사장이 기존 송전망 계획을 전면 수정해 도시.산업시설이 밀집한 해안선을 따라 땅속으로 송전선로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실무진에 지시했다고 한다.

실무자들은 바람직한 방안이지만 기왕에 시설한 철탑송전망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결론을 못본 상태에서 사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진보하고 시민들의 가치관과 욕구가 달라지는데도 한 세대 이전 낡은 시스템을 기왕의 투자가 아깝다는 이유로 계속 확대하는 것이 옳을까. 이런 사안이 관행과 타성에 젖은 일선 실무기술자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져 괜찮을지도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최근 미국 메인주에서는 케너백강을 가로질러 축조된 에드워즈댐이 철거됐다. 메인주 소비전력의 0.1%를 공급해온 이 댐은 전력생산의 효과보다 연어.농어.청어 등 물고기가 산란지에 이르는 물길을 막아 생기는 환경적 손실이 더 크다는 판단에 따라 철거된 것이다.

철거현장에는 인근 주민 수천명이 나와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강물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올렸고 교회들은 일제히 경축의 종을 울렸다고 지난 21일자 뉴스위크지는 전하고 있다.

미국내 7만5천여개 댐 가운데 상당수가 속속 해체되고 있으며 강물을 바다로 흘러가게 놓아두는 것을 낭비라고 여겼던 생각이 이제는 잘못된 것으로 비난받고 있다는 것이 잡지의 보도다.

수자원을 활용한다며 전국 주요 강 하구를 모두 막아버리고 중.상류에 대형 댐을 계속 건설하고 있는 우리의 방식이 과연 언제까지 과학적이며 경제적일까. 남한강의 상류인 동강에 새로 댐을 쌓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지만 우리 수자원관리정책을 원점에서 따져볼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송전탑이나 댐이나 과거의 경제개념.기술체계의 소산이 달라진 사회환경에서 문제를 낳는 사례다. 그 근저에 깔린 것은 패러다임의 충돌이다.

이 점에서는 벽지 소규모 초등학교 통폐합도 비슷한 사안이다. 교육부는 통폐합 이유를 여러가지 들고 있으나 판단의 전제에 문제가 있다. 왜 학교는 일정 규모 이상이라야 제대로 교육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교육환경의 선택권은 누가 가져야 옳은가. 학부모인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반대해도 일방적으로 폐교하는 것이 타당한가.

교육행정 당국의 관리편의 말고는 문제가 없는 일 아닐까. 해방 이후 우리 교육현장의 가장 큰 문제는 과밀학급이었다.

학생수가 줄어 이제야 개별지도.인성교육이 가능한 환경이 됐다면 적극 활용할 일이지 다시 먼 거리의 큰 학교로 모을 일은 아니다.

크게 보면 현재의 학교제도는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정보사회로의 이행과 함께 나라마다 학교제도를 포함해 교육에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취학대상의 30% 가량이 국공립교육기관이 아닌 과정을 선택하고 있으며, 그 중 1백만명 가량은 가정학습이나 우리 옛 서당식 교육으로 옮겨간 상태다.

개혁의 내실은 바로 이런 사회의 하부구조를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재정비하고 재구성하는 일이다.

문병호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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