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억 문화재단 만들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 모자의 또 다른 도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성중앙임형주가 100억원을 투자한 문화재단이 올해 초 서울염곡동에 문을 열었다. 어머니 김민호씨가 재단의대표를 맡고, 그는 이사 겸 재단 산하의 영재 교육원인 트원소사이어티의 음악원장을 맡았다. 모자는 제2의 임형주가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 예술적 기질 가진 글로벌 리더 키울 것,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

지난 2003년, 지금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앳 된 얼굴로 ‘애국가’를 선창해 얼굴을 알린 팝페라 테너 임형주. 이후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 산펠리체 음악원에 재학 중인 그는 스물넷 어린 나이에 이미 세계적 인 팝페라 테너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3월 초에는 그가 100억원을 투자한 아트원문화재단이 오픈해 화제를 모았다. 1년 내내 세계 각국 을 오가는 바쁜 아들을 대신해 어머니 김민호씨(49)가 재단 대표를 맡고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아이들의 수업을 챙긴다. 3주 전 한국에 들어온 임형주를 만났다. 그의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는 어머니 김민 호 대표도 함께 자리했다.

남자가 태어났으면 이름 한 번 날려야 하지 않겠어요

“한국에 잠깐 들어올 때마다 다른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이번에는 오 랜만에 인터뷰이가 되어보네요. 제가 요즘 경제 잡지 『포브스』 한국 판에서 ‘임형주가 만난 한국의 리더들’을 연재하며 인터뷰어로 활동 하고 있어요. 공연하랴 음반 녹음하랴 공부하랴 공부 가르치랴 정말 바빠요. 놀지도 못하고 연애도 못하고 그렇게 지냅니다(웃음).”

그는 이따금 홀로 지내기 외로울 때와 연애가 하고 싶을 때를 제외하 고는 자신이 선택한 아티스트로서의 삶에 만족한다. 그가 일찍부터 진로를 정하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기까지는 어머니 김민호 대표의 독특한 교육관이 한몫했다. 김 대표는 성악을 하고 싶다는 아 들에게 레슨 한 번 가르치지 않았다.

“임형주가 어려서부터 워낙 미술을 잘해서 미술로 성공할 줄 알았는 데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음악으로 예원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 어요. 아이의 노래를 들어보니 제법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너의 예 술성을 그곳에서 알아봐준다면 하고 아니면 미술을 하는 게 좋겠다’ 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실기 시험을 봐서 합격하고 3년 내내 1등 을 하더군요.”(김 대표는 아들을 꼬박꼬박 ‘임형주’라고 부른다. 아이 의 인격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불렀단다.)

김민호 대표는 아들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타 고난 목소리도 있겠지만 또래에 비해 월등한 감정 표현력 덕분일 것 이라고 분석한다. 그녀는 아들을 예술가로 키우기 위해 아이의 감수 성을 키워주는 데 주력했다.

“임형주 엄마라고 하면 다들 지적으로 아이를 키웠을 거라고 생각하 는데 안 그래요. 비 오면 비 맞히고 눈 오는 날은 3시간을 밖에 세워 뒀어요.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피부에 닿는 차가움도 느껴봐야 한다 고 설득해서요. 시험 기간에도 ‘너는 예술인이야. 나가자. 시험은 찍 어’ 그러고는 강원도에 데려가 꽁보리밥 먹이고 그랬어요. 솔직히 그 나이에 사랑을 해봐서 상처를 받았겠어요, 경제적으로 힘들어봤겠어요. 제가 평범하게 키웠다면 분명 마마보이가 됐을 거예요.”

“맞아요. 저는 어머니한테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놀 아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셨죠. 제가 학원 가고 싶다고 해도 아이 때 놀지 않으면 못 논다고 학원도 안 보내주셨어요. 그 덕분에 제 인생 최악의 점수는 수학 33점이에요(웃음).”

임형주는 예원학교 재학 시절 수학은 40점대, 과학은 50점대를 받았 다. 개교 이래 이런 성적을 받은 학생은 처음이라며 수학 교사가 40 대를 때린 적도 있다. 속옷에 살이 들러붙을 정도로 맞았다. 그런데 도 김민호 대표는 그 교사에게 전화해 “아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김 대표는 아들만의 인생철학을 만들 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듣고 소름이 끼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건 그 사람의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덕분에 임 형주는 원 없이 놀았다. 놀아도 세계를 누비며 스케일 크게 놀았다.

“임형주는 아홉 살 때부터 부모 없이 세계 여행을 다녔어요. 누우면 전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도록 세계지도와 사진을 방에 붙여줬죠. 그러곤 ‘세계는 이렇게 넓어. 도전해 볼 만하지 않니’라고 늘 말해 줬어 요. 전 임형주가 뭐가 되든 될 것 같았어요.”

김민호 대표는 아이에게 문제집은 사주지 않아도 집에 아이 친구들 을 불러서 파티를 해주는 엄마였다. 그렇게 신나게 놀아본 임형주의 감성 풍부한 음악은 많은 곳에서 사랑받고 있다. 올봄 발매된 임형주 의 첫 미니 앨범 ‘마이 히어로’도 타이틀 곡이 영화 테마송과 CF 배경 음악으로 이용될 정도로 반응이 좋다. 김 대표는 지금도 아들에게 노래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재단 산하에 유치원 아트원소사이어티(Art One Society)를 운 영 중인 김민호 대표는 요즘 엄마들이 너무 아이를 곱게 치마폭에 감싸 키운다고 걱정이다. 그녀에게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타 인일 뿐이다. 아이에겐 아이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임형주를 잡초처럼 키우고 싶었어요. 친구들은 제게 ‘형주가 잘됐으니까 큰소리칠 수 있는 거지. 우리는 아이의 미래가 불안해’라 고 말해요. 왜 불안할까요? 아이를 믿어야죠.”

“솔직히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안 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져요. 제 경우 부모님이 방임주의로 풀어두니까 스스로 불안해서 더 하게 되 더라고요. 저는 제 인생을 제가 개척했어요. 한국에서 공부할 때 콩 쿠르도 많이 나갔지만 대표님은 한 번도 같이 안 가셨어요. 그런데 도 늘 1등을 하자 다른 부모님들이 ‘쟤는 고아라 이 악물고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김 대표는 임형주를 독립적으로 키웠다. 무슨 일이든 혼자서 해낼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자신감을 북돋아줬다. 실제로 임형주는 스물 넷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젓하고 당당하다. 김 대표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같은 눈높이에서 아이를 바라봤다. ‘하지마’라 는 말 대신 늘 ‘~할래?’라고 의견을 물어봤고 ‘넌 뭐가 되도 되겠다’ 고 격려해 줬다.

“저는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아트원홀 무대에 서서 자신의 생각도 발표하고 시도 읽게 해요. 무대에 서본 아이가 나중에 대중 앞에 서는 리더가 되죠. 대신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잘난 척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아이만의 철학이 있다면 그 아이는 세계 어딜 가도 성공할 거예요.”

“제 삶의 모토는 ‘겸손한 자신감을 갖자’예요. 겸손하되 당당하고 또 야망은 커야죠. 남자가 한 번 태어나서 이름을 날려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가끔 노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일을 하면 결과가 남는데 결과 없이 시간 보내는 건 아까워요. 1분 1초도 더 자 기에게 플러스되게 살아야죠.”

제자중에 플루트 부는 UN 사무총장이 나온다면 근사하지 않겠어요

아트원문화재단은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와 1등을 뜻하는 ‘원 (one)’을 더한 이름이다. 임형주가 5년간 번 돈을 모두 쏟아 붓고 어 머니의 도움도 받았다. 올해 스케줄이 꽉 차 있을 만큼 바쁜 그가 왜 굳이 돈 많이 들고 손 많이 가는 문화재단을 세웠을까.

“열심히 번 돈으로 기부를 할 때면 기분이 참 좋아요. 그런데 어떤 단체에 기부를 하면 사실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출처가 확실하지 않잖아요. 저는 제 재단을 통해 코리안 포스트 챔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예술적 기질을 가진 글로벌 리더도 육성하는 게 목표예요. 제자 중에 피아노 치는 국무부 장관, 플루트 부는 UN 사무총장이 나온다면 근사하겠죠? 재능이 있는데도 가정 형편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제도를 운영할 계획도 세 우고 있어요.”

투자한 100억의 대부분이 들어간 5280㎡(1600평) 규모의 문화재단 건물에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첨단 디지털 기기를 갖춘 영역별 교실은 물론 아티스트 임형주가 참여한 사업답 게 19개의 전문가급 개인 레슨실, 200석 규모의 공연장, 발레실 등 을 갖추고 있다. 모자는 이곳에서 수익 사업으로 유치원을 운영한 다. 모든 수업은 영어와 한국어로 동시에 이뤄진다. 이를 위해 캐나 다 현지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지닌 원어민 교사와 영어가 가능한 한국인 교사를 초빙했다. 임형주는 “어렸을 때부터 국제 무대에서 활 동하며 감성 교육과 언어 교육이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영어는 기본이라고 말한다. 김민호 대표는 아들을 일찍 유학 보내며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로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예요. 재능이 있다면 세계로 나가야죠. 그러려 면 영어가 중요하지만 모국어는 못하면서 영어만 잘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영어만 잘하는 바보보다 영어도 잘하는 천재를 키우려 합 니다. 임형주가 음악수업을 할 때도 반은 영어로 반은 한국어로 진 행해요.”

그러나 색소폰을 부는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모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역시 예술 문화 체험. 아트원소사이어티에서는 무용, 미술, 음악, 발레 등 다양한 예체능 수업을 원하는 대로 골라 들을 수 있다. 일주 일에 한 번은 박물관이나 체험 전시관 등에 견학을 가고, 한 달에 한 번씩은 건물 안에 마련된 홀에서 영화나 음악 공연을 관람한다.

김 대표는 특히 엄마들이 아이가 유아일 때부터 많은 문화적 체험을 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가 아이의 감수성이 가장 발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 역시 아들을 파티, 공연장 등에 많이 데 리고 다녔다. 그래서 문화재단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마술쇼, 오케스 트라 초청 공연 등 선착순 무료 이벤트를 연다.

“감수성이 한창 발달할 때 아이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는 정말 중요해요. 임형주의 경우 네 살 때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에 푹 빠 져 자신은 프랑스 귀족이라며 한겨울에도 스타킹 신고 반바지를 입 었어요. 저는 그때마다 멋있다고 해줬죠. 그때 임형주는 프랑스 역 사며 문화를 스스로 익혔어요. 아마 제가 귀찮아하거나 혼냈다면 흥미를 잃었겠죠.”

임형주는 자신의 감성을 극대화시켜 준 어머니께 늘 감사드린다. 그리고 어머니와 뜻을 모아 함께하는 문화재단을 통해 더 많은 어린이 가 자신처럼 세계 무대를 누비길 바란다.

“요즘 청소년들은 야망이 없는 것 같아요.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 해봐야 알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생긴 건 여성적이어도 굉장히 저돌적이에요. 저는 어린 친구들이 꿈을 갖고 노력해 나갔으 면 좋겠어요. 아, 또 신문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매일 15 개 일간지를 읽어요. 신문을 읽으면 박학다식해져요.”

임형주의 최종 목표는 언론인이다.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창을 만들 고 싶단다.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로 꿈을 다 이룬 듯 보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노력 중이다. 인터뷰어로 활동 중인 것도 미래를 위한 연습. 이날도 인터뷰 약속이 있다며 나가던 그는 자신의 최근 활동 사 항까지 업데이트된 프로필이라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데뷔한 지 10년이 넘은 스타가 프로필을 직접 건네며 홍보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모습을 김민호 대표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역시 임형주, 대단해.” 엄마는 아들을 끝까지 격려하고 칭찬했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이 수업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임형주. 아이가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취재_윤혜진 기자 사진_이민희(studio lamp)

팟찌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