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해되는 조총련] 하. '이념의 틀' 벗어던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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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4월 10일 서만술 (徐萬述) 조총련 제1부의장은 평양으로 갔다.

표면적으론 김일성 (金日成) 탄생 87돌 기념식에 참석한다는 것이었으나 사실은 조총련 회생책을 논의하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고 한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徐는 김정일 (金正日) 노동당 총비서와 3시간 동안 단독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金총비서는 조총련이 기존 노선을 바꿔 재일동포들의 실정에 맞는 권익옹호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노선변화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조총련 일각에선 "조선학교 교실의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떼는 문제도 조총련 스스로 결정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는 소문까지 돌았다.

徐는 귀국후 '이데올로그.조직운동가' 에서 '권익옹호 활동가' 로 바뀌었다.

김정일과의 독대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지난 5월 조총련 여성동맹 관계자를 만났을 때 "총련 중앙은 동포들의 요구에 맞게 운동을 재구축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조선신보 5월 21일자) 고 말했다.

조직원의 요구에 맞춰 조총련의 활동을 재구축하려는 조짐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해 조직의 군살빼기에 이은 활동방향의 전환이다.

조총련계 학생들은 학교에서만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으면 된다.

등하교 때는 자유복 착용을 허용했다.

치마.저고리는 조총련이 일본 사회에 자랑해온 민족교육의 상징이었다.

상공인의 한국.민단 접근에도 제동을 걸지 않는다.

지난 6월 12일 오사카 (大阪) 한국청년상공회 설립 10주년 행사에는 조선오사카청년상공회 윤태 (尹太) 회장이 단상에 나와 축하인사를 건넸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달라졌다.

이념교육.선전이 줄고 동포 생활상에 관한 기사가 부쩍 늘었다.

'안녕하십니까…3세 기자가 본 동포지도' 라는 동포 생활상 소개 르포 기사도 연재되고 있다.

첫회분은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조선신보 창간 이래 최대 변화다.

한국을 무턱대고 비난하던 논조도 바뀌었다.

1천5백여개 분회의 단위별 친목행사도 성황이다.

야유회, 등산.바둑대회가 줄을 잇는다.

정치집회로 내부를 단속하던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북한과 조총련 중앙의 이같은 변화가 허물어져가던 조직을 다시 굳건하게 세우게 될지는 의문이다.

자발적 변화가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떼밀린 일시적.전술적 미봉책이라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민심이반, 세대교체, 재정.경제난 폐해는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이다.

권익옹호단체로 무게 중심을 옮긴 조총련의 '실험' 결과가 주목된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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