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남 1녀, 예민한 사춘기의 자녀들을 둔 어머니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갓난아기를 키우겠다니, 가족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힘든일을 하려 하느냐' '혹시 아기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지만 평소 아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씨는 이제 자신의 아이들이 어느정도 큰 상황이라 꼭 키워보고 싶었고 결국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냈다.
가족들의 걱정과는 달리 아기가 집에 온 뒤, 집안에는 늘 웃음꽃이 피었다. 남편도 "당신 배아프지 않고 아들하나 얻었네"라며 거들어 줬다. 이렇게 시작된 위탁모 생활이 올해로 14년째다. 14년간 40명의 아이를 돌봐왔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이씨는 털어놓았다.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 그렇다는 것.
방 3칸짜리 이씨의 집에는 '아기 방'이 따로 있다. 아기 침대와 동화책, 띠벽지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한 눈에 '아기 방'임을 알 수 있다. 가슴 속 모정은 물론 집안의 방 한칸 까지 내준 것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보니 매일밤 안방이 아닌 아기방에서 아기들과 함께 잠든다.
이씨는 현재 경민(가명·4개월)이와 혜수(가명·3세)를 돌보고 있다. 경민이는 세상에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엄마 품을 떠났다. 이 때문일까, 다른 아기들보다 유난히 작고 약해, 이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이씨의 품에서 사랑을 받으며 지금은 누구보다 맑은 미소를 가진 아이로 자랐다. 재잘재잘 종알거리며 예쁜 짓을 할 나이의 혜수는 '엄마'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하나씩 세상의 단어를 배워가고 있다.
"혜수는 처음 왔을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도 작고 말도 못해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엄마, 아빠라고도 부르고 좋아졌죠. 그럴 때 보람을 느껴요."
요즘 이씨는 내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내년이면 위탁모로 활동한 지 15년이 되는데, 홀트아동복지회에서는 15년 이상 활동해 온 위탁모를 대상으로 미국 방문 행사를 진행한다. 위탁모는 이때 입양 가정도 방문하고, 입양 아이들 모임에도 참석하게 된다.
“미국에 가면 입양 아기들 모임이 있나봐요. 위탁했던 아기들 중에 모임에 나오는 아이가 있으면 만날 수 있데요. 또 입양 가정도 방문 해보고 그렇다는데 기다려져요. 아기들이 보고 싶어요.”
위탁모에게는 매달 일정 금액의 양육비가 지원된다. 기저귀와 옷가지들도 함께 지원되지만 아기를 키우기에는 사실 부족한 금액이다. 길을 가다 눈에 띄는 예쁜 옷도 사주고 싶고, 아기가 좋아하는 간식도 사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위탁모를 부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거 받아서 자기 애 학원을 보낸다던가, 그러는 사람들이 있데요. 애 보낼 때도 자기 팔자지 뭐 우냐고 이런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위탁모는 아기에게 정을 줘야 하는 일이에요. 의무로 해서는 안되요.”
아기에 대한 사랑은 이씨가 14년간 위탁모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지난해, 국내 입양의 30%를 담당한 홀트에는 지금도 530명의 아이들이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정의 온기를 전해 줄 위탁가정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복순 씨처럼 위탁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홀트 아동양육팀(02-322-8671~2)으로 문의하면 된다. 그렇다고 아무나 위탁모가 될 수는 없다. 아이가 편안하고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아기들에게 세상의 사랑을 가르치는 위탁모 이복순씨의 일상과 천사의 미소를 지닌 위탁 아기들의 모습은 아래 동영상과 TV중앙일보에서 만날 수 있다.
뉴스방송팀 송정 작가·이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