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 다 있다, 명절 상차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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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연구가 김은경(44·쿠킹 노아 대표)씨의 장보기는 일반 주부들의 장보기와는 사뭇 다르다. 싱싱하고 품질 좋은 식재료를 잘 확보하는 게 좋은 요리로 직결되기 때문에 더 꼼꼼하고 철저하다. “채소나 생선, 과일 등은 재래시장에서 구입하는게 좋아요. 마트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재래시장의 품질을 따라 가진 못하죠.” 20년 차 주부이기도 한 그가 초보 주부들을 위한 장보기 조언에 나섰다. 송파구의 대표 재래시장인 방이시장으로 가봤다.

청과류 대형 마트보다 30~50% 저렴
지난 22일 오후 4시, 송파구 방이동 방이시장. 저녁 장사 준비로 가게 일손들이 바빠진다.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속속 거리를 채운다. 생선 가게와 채소 가게에는 매일 오후 4~7시 별도의 판매대에 ‘떨이 상품’들이 준비된다.

베테랑 주부답게 바퀴 달린 카트형 장바구니를 준비해온 김은경 씨.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채소 가게다. “나물 거리는 미리 고르는 방법을 알아두는 게 좋아요. 국산과 중국산도 구별해야죠.” 애호박 1개와 시금치 1단은 각각 500원. “대형마트보다 30~50%는 저렴하네요. 싱싱한 건 말할 필요도 없구요.”

17년째 방이시장을 지키고 있는 ‘현대생선’. 한 주부가 주인 박경렬씨에게 “자반 두어마리 줘봐요”라고 말한다. “갈치는 안 가져가시고?” ”한마리 줘 보시든가”

가격이 얼마인지 묻지도 않고 한마리, 두마리도 아닌 ‘두어마리, 서너마리’를 달란다. 5년째 단골이라는 김혜숙(43·송파구 방이동)씨는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좋은 물건 싸게 파는 건 다 아는 거니까.” 생선과 해산물들은 매일 새벽 4시, 가락동 수산시장에서 들여온다. 차례상에 올릴 조기(중국산)는 크기에 따라 4000~6000원,참조기 큰 것은 1마리에 1만원이다.

넉넉한 시장 인심은 ‘덤’
과일을 사러 들른 ‘주내청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제수용 사과가 2개 1000원, 배는 1개 1000원이다. 터질 듯 잘 익은 홍시에 눈이 간다. “홍시는 어떻게 해요?” 사장 김현철 씨가“6개 3000원”이라며 한 개를 내민다.“어머, 엊그제 백화점에서 7000원 주고 샀는데…” 저렴한 가격에 김은경 씨가 놀란다. 3000원 어치 샀는데 2개를 덤으로 받았다. 이미 맛보기로 먹은 2개를 포함해 4개나 덤으로 얻은 셈. 김씨는 "무거운 과일류는 가장 나중에 사거나 가게에 맡겨두고 장을 보는 것이 요령" 이라고 조언했다.

가게와 가게 사이에 도토리묵 임시 판매대가 보인다. “어머, 묵이 너무 쫀득쫀득하니 맛있네. 양념장은 어떻게 만든 거예요?” 새콤하면서도 짭조롬한 양념장 맛에 요리 전문가도 감탄했다. 도토리묵 장수 아주머니가 “맛있어요?”라며 양념장을 비닐 봉지에 넉넉히 담아낸다. 손수 만든 1000원짜리 도토리묵 한 덩이를 사고, 잔파와 깨소금이 가득한 양념장을 덤으로 얻었다. "시장에선 말 한마디만 잘해도 이렇게 덤을 얻을 수 있어요"

손두부 집, 방앗간 등 구경 재미도 쏠쏠
갓 뽑은 가래떡이 모락모락 김을 내는 ‘친절떡집’,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는 젓갈과 반찬이 가득한 ‘강경젓갈직판장’, 직접 만든 따뜻한 두부를 살 수 있는 ‘즉석 두부 박사’는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풍경을 연출한다.

‘강남방앗간’ 입구에는 태양초 고추가 푸대자루에 그득하게 담겨 있다. 대형 마트에서 포장 판매되는 선홍빛 고춧가루를 보면서 색소를 넣은 게 아닌가 찜찜해 했다면 방앗간에서는 안심해도 된다.

김씨는 “태양초 고추는 꼭지를 따고 동네방앗간에 가져오면 공임(600g 당 1000원)만 주고 특등급 고춧가루를 만들 수 있다. 참깨를 볶아 짜낸 고소한 참기름도 방앗간표 만한 게 없다”며 “웰빙 명절 음식을 마련하고 싶으면 재래시장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사진설명] ①방이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 요리연구가 김은경 씨. ②통통하게 살이 오른 갈치는 새벽마다 수산시장에서 들여온다. ③홍시 6개를 샀는데 맛보기로 2개, 덤으로 또 2개를 얻었다

<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

<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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