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짜리 감리 1원에…'최저가 낙찰'도입후 덤핑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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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근 대구의 한 아파트건설공사. 두 회사가 똑같이 감리용역을 1원에 맡겠다고 써냈다. 적정가가 3억2천만원에 달하는 감리용역을 놓고 1원에 경쟁을 벌이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2개 업체를 놓고 그동안의 실적 등을 참고로 자격심사가 실시됐는데 경쟁업체보다 점수가 조금 높은 S업체가 가까스로 선정됐다.

올들어 이처럼 아파트건설 감리용역에 1원짜리 낙찰 사례가 빈발, 부실공사를 감독하는 감리업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덤핑낙찰 왜 생기나 = 지난달말까지 덤핑낙찰된 현장은 건교부가 자체 파악한 것만도 전국 65곳에 이른다.

덤핑낙찰의 가장 큰 이유는 지난3월 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의 아파트 건설공사 감리용역의 최저가 낙찰제도. 이전에는 입찰자격 사전심사 (PQ심사) 를 거쳐 점수가 높은 5개 업체만 제한적으로 참가토록 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일부 대형 업체에게만 낙찰을 편중시킨다는 이유로 중소업체들의 반발이 심해 건교부가 제도를 바꾼 것. 감리실적.기술자보유 현황.자본금 등을 기준으로 80점 이상 (감리업체의 70%이상이 이에 해당) 만 되면 모든 업체가 참가할 수 있도록 개정돼 한 공사에 수십개 업체가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게 됐다.

이로 인해 전국 6백여개의 감리업체들은 갈수록 낙찰받기가 어려워지자 가격은 제쳐두고 일감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생각에서 덤핑낙찰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외환위기 이후 주택건설 경기 침체로 일감이 크게 줄어든 것도 덤핑낙찰을 부추기는 한 원인. 1원짜리로 낙찰을 받은 한 감리업체 소장 S (45) 씨는 "IMF이전에는 최소한 8개 현장은 확보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1~2건에 불과한 실정" 이라며 "아무리 낮은 가격으로 응찰해도 낙찰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울며겨자 먹기로 1원을 써냈다" 고 말했다.

어차피 모든 감리원에게 월급을 줘야 하기 때문에 인력을 놀릴 바에는 차라리 일감을 따내 실적이라도 쌓고 보자는 생각에서다.

◇ 감리 제대로 될 수 있나 = 낙찰가가 낮으면 감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감리업체 관계자들은 오히려 더 철저한 감리를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감리비를 제대로 받았을 때는 시공회사로부터 돈을 제때 받기위해서라도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거리낄 것 없으니 직원들에게 규정대로 감리를 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1원짜리로 낙찰을 받은 것은 다른 공사 입찰때 나쁜 점수를 받지 않기 위한 실적쌓는 것이기 때문에 시공회사와의 관계에서 홀가분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주택건설업자들은 감리원들이 시공회사로부터 뒷돈을 받고 하자를 눈감아주는 사례는 물론 시공업체와 별도의 이면계약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곧 부실을 감독해야할 감리원들이 시공회사와 유착관계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 감리는 허술해질 게 뻔하다.

◇ 대책은 무엇인가 = 건교부는 최저가 낙찰제인 주택건설공사의 감리용역을 일반 건설공사 입찰과 같은 적격심사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일반 건설공사는 사업시행능력 70%.가격 30%로 적격자를 심사한 뒤 선정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저가낙찰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일반 건설공사의 경우 1백억원 이상인 공사는 적정가의 75%선, 50억원 이상은 80%이상이 돼야 낙찰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감리용역을 입찰로 실시하는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국토연구원의 김재영 (金宰永) 건설경제연구실장은 "감리는 제품을 만드는 것과 달리 일종의 컨설팅에 대한 대가로 주는 인건비인데 이를 입찰로 하는 것은 결국 임금을 깎는 꼴" 이라며 "이는 곧 부실감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고 말했다.

金실장은 따라서 "감리용역은 최소한의 임금을 보상해주는 금액 이상에서 입찰이 아닌 발주자와 협상방식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다른 감리업체 관계자는 입찰 참가자들의 응찰금액을 모두 합해 평균가격에 바로 근접한 가격을 써낸 업체가 낙찰을 받도록 하는 '부찰제'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방법이 극단적인 저가낙찰도 일어나지 않고 예정가 유출로 인한 부정이 개입될 소지가 없기 때문에 가장 공평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이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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