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7월의 코스모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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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초한 맨도리/담담한 빛깔/수줍은 적요 (寂寥) /가벼운 애수 (哀愁) /그리고 또 하나 그윽한 동경 (憧憬) ." 작고한 이희승 (李熙昇) 시인은 1936년에 발표한 시 '코스모스' 에서 코스모스의 모습을 이렇게 읊었다.

'맨도리' 는 맵시의 다른 표현이다.

'몽롱한 황홀' 이란 표현도 썼다.

길섶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꽃이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면 모르되 거기에 탐닉하면 절묘한 진리가 숨어 있다는 뜻이리라. 이름있는꽃들은 거의 모두가 전설이나 설화를 지니고 있게 마련인데 코스모스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 연원 (淵源) 조차 알 수 없지만 다만 '코스모스는 이 세상의 모든 꽃 중에서 신 (神) 이 가장 먼저 만든 꽃' 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맨 처음 만들다 보니 가냘프기만 하고 어쩐지 흡족치 않아 여러 가지를 만들게 됐고, 그 때문에 코스모스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최후의 '완성품' 이 국화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코스모스는 모든 꽃의 시조 (始祖) 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사리꽃'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코스모스가 우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아직 한 세기도 채 안된다.

1910년대 외국의 선교사들이 씨앗을 가져와 파종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멕시코가 원산인 코스모스가 유럽대륙에 전파된 것이 18세기 초였다니 그리 많이 늦은 것도 아니다.

이희승 시인이 '코스모스' 를 읊은 것도 코스모스가 간간이 눈에 띌 무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의 실패작' 이라 회자돼 온 탓인지 이 세상의 수만가지 꽃 가운데 코스모스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고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물건이든 많고 흔하면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지 않는가.

한데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게 마련이니 코스모스의 꽃말이 '사랑과 의리' 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꽃의 모양과 색과 향이 합쳐진 '꽃의 기운' 을 이용해 병을 고친다는 중국의 전통적 화요법 (花療法)에 따르면 코스모스는 심신이 지쳤을 때 특효라고 한다.

가을철에 접어들어 기온이 섭씨 15도 안팎으로 내려가면 피기 시작하는 코스모스가 올해는 지역에 따라 한달 내지 두달 가까이 빨리 피고 있다 한다.

각박한 삶에 찌들고 지친 사람들은 중국의 화요법이 일러주는 것처럼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판에 나가 깊이 심호흡하면 온갖 피로와 시름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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