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경제 인식 불협화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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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위기 인식과 처방을 놓고 여권 내 분위기가 심상찮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과거사 국면에 눌려 왔던 경제 살리기 목소리가 크다. 특히 그동안 금기시되다시피한 노동 유연성 문제까지 당 지도부가 거론하고 나섰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은 다른 듯하다. '아직 경제 위기는 아니다'는 입장에서 큰 변화가 없다. 여기에 일부 진보 성향의 소장파들도 노 대통령과 뜻을 같이한다. 이 때문에 당내 마찰은 물론 당.청 간 갈등 가능성도 예견된다.

◇ 위기감 왜 높아 가나=23일 오전, 상임중앙위원회 회의에서 김혁규 상임중앙위원은 "역사 바로 세우기도 중요하지만 우선 순위가 잘못돼 가고 있다"며 "현실을 바로 보고 정치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임채정 기획자문위원장은 이 말을 받아 "경제 불안 심리를 해소하는 핵심은 노사관계에 있다"며 "노사관계의 대타협이 있어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공산당 프락치'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이부영 의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사 규명과 경제 살리기 중 우선 순위는 경제 살리기에 있다"고 잘라 말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이처럼 경제에 집착하는 것은 최근 추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당 지지도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입장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이런 상태로 가다간 재.보선(10월)에서의 패배는 물론 정국 주도권까지 야당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 어긋나는 당과 청와대=열린우리당의 이 같은 주장을 노 대통령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과 만찬을 하며 "이번 8.15 경축사엔 민생과 경제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가 표명돼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인사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경축사는 친일행위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의 포괄적 해결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제 위기에 대해서는 "지나친 비관과 불안감, 그리고 자기 비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만 했다. 게다가 일부 소장파 의원은 여전히 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 재야 출신의 정봉주(44)의원은 "장기적으로 개혁이 경제 안정에 가장 도움이 된다. 경제 살리기를 우선해야 한다는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며 지도부에 맞서고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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