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교춤 이렇게 변해왔다-MBC'한국 10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교춤이라면 불륜.탈선 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서구에서는 건전한 레크리에이션으로 자리잡은 사교춤이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렇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을까. MBC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 사교춤의 두 얼굴' 편 (8일 밤11시)에서는 사교춤의 역사를 통해 한국 춤 문화를 조명하고 건강한 발전방향을 모색한다.

우리 사교춤의 역사는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건전한 교양으로 보급됐으나 일제 시대에 접어들며 댄스홀과 사교춤은 일체 금지된다. 37년에는 영화배우 오도실.기생 박금도 등 조선 여성 8명이 총독부에 '서울에 딴스홀을 허 (許) 하라' 는 청원을 내기도 했다. 해방 후에도 댄스홀은 허용되지 않았고 50.60년대에는 음성적인 비밀교습이 유행했다.

이 과정에서 터져나온 것이 55년의 '박인수 사건' 이다. 해군장교 출신인 그는 사교춤을 통해 사귄 70여명의 여자를 농락했다. 이어 전직 부흥부 차관 부인이던 안모씨의 '춤바람 간통사건' 등이 알려지면서 사교춤과 댄스홀은 '불륜의 온상' 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또 이 프로그램에서는 69년 일어났던 '사교춤계 7공자 사건' 을 공개한다.

이 사건은 아내가 춤바람이 나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보기관의 한 간부가 서울 시내 모든 '춤꾼' 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특히 악명높은 7명이 고초를 겪게 된 것.

자유당 말기, 10월 유신 직후, 5공화국 초기 등 정권의 위기 때마다 '사회기강 확립' 이란 명분 아래 사교춤이 탄압받았던 이유도 알아본다. 이외에도 70년대말~80년대 초 중동에 남편을 보낸 부인들을 유혹한 제비족 이야기,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춤인 '지루박' 의 기원 등이 소개된다.

채환규PD는 "한국의 유교적 전통,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는 변태적인 춤문화, 사교춤 전문가에 대한 자격증 제도 부재 등이 이같은 문제를 낳아왔다" 고 말한다.

문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