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금속노조 ‘투쟁 주력’ 이탈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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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5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경훈 당선자(오른쪽)가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현대자동차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지부)는 한국 강성 노동운동의 대명사다. 1987년 노조가 생긴 이래 94년을 제외하고 매년 파업을 벌이면서 그런 평가를 받았다.

이런 현대차 노조에 중도실리 노선의 후보가 당선된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중도 노선의 위원장은 이번이 두 번째다. 94년 이영복 위원장이 당선된 그해 파업이 자취를 감췄다. 이후 현대차 노조는 민주노총이 벌이는 전국적인 총파업과 정치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기아차와 같은 다른 대기업 노조들이 현대차 노조의 움직임을 좇아 투쟁전선을 형성할 정도로 현대차 노조는 전국 노사분규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이경훈 노조위원장 당선자는 당선 소감으로 “국민적 외면과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는 낡은 방식의 운동이 아니라 조합원과 소통하고 주민과 상생하는 제2 민주노조운동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으로 힘을 과시하는 노동운동에서 탈피하겠다는 얘기다.

이 당선자는 “(금속노조는)교섭권·파업권·교섭체결권을 기업지부(현대차노조)에 과감히 위임해야 하고, 민주노총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합원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으면 상급단체의 방침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정치 투쟁이나 총파업에 현대차 노조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다. 이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에 금속노조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차의 온건화가 쌍용자동차 민주노총 탈퇴보다 금속노조에는 훨씬 타격이 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가 강경기조를 계속 유지할지 관심이다. 현대차 노조가 민주노총·금속노조가 주도하는 투쟁전선에 어깃장을 놓으면 결속에 균열이 생기고 투쟁동력은 크게 떨어진다. 금속노조가 현대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올 들어 금호타이어와 GM대우가 금속노조의 지침을 어기고 임금을 동결하는 등 금속노조에 반기를 들었다.

이번에 합류한 통합공무원노조는 단체행동권이 없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정치 투쟁이나 총파업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금속노조의 힘이 떨어지면서 민주노총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금속노조와 현대차가 틈이 벌어지면서 갈등이 생길 소지도 있다. 금속노조는 규약에 따라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현대차 노조를 징계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지부장을 징계해 직무수행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대차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탈퇴 투표에서 동의(조합원 3분의 2 찬성)를 얻지 못하면 집행부가 사퇴해야 한다. 절반이 조금 넘는 표로 당선된 이경훈 집행부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듯하다.

현대차 노조의 변화가 계속되려면 회사의 노무관리가 선진화돼야 한다. 경기개발연구원 최영기 석좌연구위원은 “현대차의 노무관리는 원칙 없이 주요 결정이 이뤄지는 전근대적 체계”라며 “회사가 노조의 요구에 봉사하는 노무관리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조준모(경제학) 교수는 “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회사의 노무관리가 글로벌 기업에 맞게 선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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