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염병 의외로 심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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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계속되는 이상고온 현상과 생활환경의 변화 등으로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적신호가 잇따라 켜지고 있다.

올들어서만도 법정전염병인 세균성 이질환자가 지난달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배가 넘는 6백49명이나 발생한 것을 비롯, 말라리아.유행성출혈열.쓰쓰가무시병 환자 수가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또 식중독 사고도 빈발해 현재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가 넘는 환자가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국내에서 발견된 데 이어 이번에는 97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잘 알려진 병원성 대장균 O - 157 감염환자가 경북 구미에서 확인돼 방역망에 비상이 걸렸다.

의술의 발전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한때 크게 수그러든 것 같았던 각종 감염질환이 이처럼 유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상황이다.

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급성전염병 환자수는 95년 3.6명에서 98년에는 24.4명으로 7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가 92년 다시 나타난 말라리아는 매년 환자수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15년만에 공수병 환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종 전염병과 퇴치된 전염병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지구촌의 온난화, 항생제 남용에 따른 미생물의 내성 증가, 국가간 인적.물적교류 증가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O - 157균만 하더라도 종전에는 미국이나 일본의 문제로 여겨져 왔으나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에 이어 두번째 환자가 발생했다.

우리도 더 이상 병원성 대장균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이제 장마가 본격화되면 각종 수인성 전염병도 극성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국민들이 우선 위생관리를 강화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켜야겠지만, 보건당국은 O - 157의 확산을 막도록 감염경로를 밝혀내 대책을 세우고 여름철 방역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당국은 이와 함께 최근의 경험을 거울삼아 각종 신종 감염질환 등에 대비할 새로운 국민건강 관리체계 구축에 신경을 써야 한다.

종전의 방식으로는 갈수록 위협이 커지는 감염질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어렵다.

수입식품의 검역체계와 집단급식의 관리강화 등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O - 157이나 슈퍼박테리아는 전염병 예방법의 관리대상에도 포함돼 있지 않은 등 법적 체계조차 정비되지 않고 인력과 예산도 절대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설마하는 사이에 각종 질환의 위협이 국민들에게 닥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종합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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