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일기' 심사…161만편중 780편 예선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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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심장 모니터에는 녹색 줄이 변화 없이 그어져 있고 박동수는 '0' 이었다.

아버지는 가셨다.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리고 무겁게 아빠 몸에 달려 있던 줄과 기계를 뺐다. 흰 강보에 싸인 내 사랑하는 아빠…. " (98년 1월 20일, H여고 2학년 李모양)

백혈병으로 고생하던 아빠를 병석에서 지켜보며 적어 내려간 한 여고생의 일기장을 읽던 오윤숙 (44.서울 동교초등학교 교사) 심사위원은 눈물을 떨궜다.

27일 서울 종로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중앙일보사 후원 '99년 제5회 사랑의 일기 공개심사' 는 일기를 읽는 심사위원, 참석한 학부모.학생 모두에게 눈물과 감동의 한자리였다.

심사대상은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가 각 학교에 보급한 사랑의 일기 1백61만편 중 1차 예산을 통과한 7백80편. 이 가운데 우수 일기를 선정, 오는 8월 최종심사를 거쳐 대통령상 등을 시상한다.

백지 위에 점자로 찍혀진 서울맹학초등학교 학생들의 점자 일기가 있는가 하면, 한 반 학생 전체가 작성한 '모듬일기' .교사일기 등 종류만도 10여가지나 됐다.

또 제자의 고민에 대해 스승이 손수 펜을 들어 일기 형식으로 답한 글도 있었다. Y여공고 鄭모양의 일기에는 "오늘 너무 절망적인 일이 있었어요. 죽고 싶을 정도였어요. 선생님께 상의드리고 싶었지만 비참하고 초라한 마음 뿐이에요" 라는 고민이, 빈 칸에는 "네 이름을 불러보고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있었다. 희망+사랑+하늘+믿음+약속, 이 모든 것을 합해 너에게 선물하고 싶다" 는 金모 교사의 답신이 각각 적혀 있었다.

특히 '한반도를 하나로, 세계를 품안에" 라는 행사 주제에 걸맞게 중국 조선족 학생들의 일기 40여편도 심사를 받아 눈길을 끌었다.

"집에 가는 길에 한 아빠트 (아파트) 앞을 지나는 데 무거운 석탄을 메고 힘겹게 한층 한층 올라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익어 찬찬히 보니 나의 아빠였다. 나의 아빠가 힘들게 일하여 번 돈을 나의 소비 돈 (용돈) 이 되는구나. " (연길시 연남소학교 5학년 김걸)

심사과정을 지켜 본 인천여공고 이명희 (39) 교사는 "어느 일기장을 펴보나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고 말했다.

인추협 고진광 부회장은 "사랑의 일기가 세대간 불신을 씻고 신뢰 쌓기에 기여할 것" 이라고 밝혔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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