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DJ스타일] 적게 말하고 많이 듣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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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진형구 (秦炯九) 전 대검 공안부장의 '파업 유도' 발언으로 민심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지난 9일 오후 김대중 대통령은 TV뉴스를 통해 76개 시민.사회단체의 집회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관련자 전원 구속과 공안대책협의회 해체.국정조사권 발동.특검제 도입을 요구하고 金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험난한 정치역정을 걸어온 金대통령은 어려운 시절 서로 의지해온 과거의 '동지' 들이 자신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金대통령은 곧바로 김정길 (金正吉) 정무수석을 불러 이들을 만나보도록 지시했다.

이후 청와대에서는 金수석이, 국민회의에서는 김영배 (金令培) 총재권한대행.정균환 (鄭均桓) 사무총장.한화갑 (韓和甲) 총재특보단장.정동채 (鄭東采) 기조실장 등이 총동원돼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들을 접촉했다.

혹독한 비판이 가감없이 金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이 무렵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심지어 인신모독성 발언까지 고스란히 보고서에 담았다" 며 "시중에 대통령의 귀와 눈이 가려졌다는 얘기가 전해졌을 때 이를 공개할 생각까지 했다" 고 토로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金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변화가 오고 있다.

金대통령은 요즘 이른 아침과 저녁 늦은 시간에 각계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직언을 청한다.

본인의 발언은 극도로 자제하고 거의 대부분 듣는데 주력한다는 게 과거와 다른 점이다.

청와대 참모들로부터도 지시에 앞서 먼저 의견을 듣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지난 16, 19일 청와대에서 金대통령과 회동한 재야,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발언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여러분을 만나니 마치 친정에 돌아온 느낌" 이라며 진지한 자세를 보이자 전에 없이 허심탄회한 분위기 속에서 고언 (苦言) 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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