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강남사람 '왕따' 작전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서울에서 매일 서울의 이익을 생각하는 강남 사람과 아침.점심 먹고, 차 마시면서 나온 정책이 분권적 균형발전 정책이 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강원지역 혁신발전 5개년 계획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다.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 이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강조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핵심의 일단을 갈파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발언은 어법과 인식의 두 측면에서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국민통합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할 대통령이 특정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감정 섞인 언사를 쏟아낸 것은 부적절하다. 마치 강남 사람들만이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도 이전 반대는 찬성의 비율을 앞서고 있다. 이는 지역별 인구비례에 따라 표본을 추출해 실시한 전국적인 조사의 결과여서 유독 강남 사람만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고 볼 수 없다.

부유층이 많이 사는 강남지역을 의도적으로 '왕따'시키겠다는 전략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만의 하나 이들을 지역균형발전을 거부하는 소수세력으로 낙인찍고, 가진 자에 대한 못 가진 자의 불만을 촉발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큰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망국적 지역주의가 문제되고 있는데 서울까지 강남과 강북으로 분열시켜서 될 일인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균형발전이 긴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반드시 수도 이전을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이뤄야 하며, 여기에 반대하면 반개혁세력으로 몰아가는 식의 추진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수도 이전 반대 움직임에 대해 "불신임 운동, 퇴진 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강남 사람' 발언의 맥락이 여기에 닿아 있다면 국가적 불행이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지역균형발전의 추진이 거꾸로 지역과 지역, 정권과 국민을 분열.대결시키는 결과가 돼선 곤란하다. 정책적 문제가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