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원 칼럼

주한미군 감축, 북한은 어찌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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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외정책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문제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해외주둔 미군병력의 감축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월 16일 부시 대통령이 앞으로 10년 안에 약 7만명의 해외주둔 미군 감축 계획을 발표했는데 민주당 측에서는 즉각 반대하고 나왔다.

미 국방부 계획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3만명을 철수하고 1개 여단 (5000명)만 남게 된다. 한국에서는 약 1만2500명의 병력을 감축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전쟁억지력에 아무 문제 없나

독일 정부는 미군의 대규모 철수계획이 유럽의 분열이 극복되었음을 말해준다고 환영했다. 또한 미군 철수가 독일 경제에 미치게 될 영향을 깊이 우려하면서도 미군이 그동안 독일을 도와준 데 대해 감사하다는 뜻을 밝히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국은 독일과 대조적이다. 우선 독일은 분열이 극복된 상태에서 미군의 규모를 조정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는 한반도에 어떤 분열도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만 감축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 지 분명치 않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규모가 상당히 감축되는 데도 한국정부는 미국의 감군계획에 대해 분명한 입장표명이 없는 것 같다. 다만 한국정부는 감군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전쟁억지력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미 국방부의 말만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인상이다. 물론 미 국방부가 해외 배치 미군의 숫자를 줄이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군사 정보기술의 혁명적 발달로 군인 수를 줄이고도 전쟁수행 능력은 오히려 향상될 수 있다는 대전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한반도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방위력이 아니라 전쟁억지력이라는 점이다. 방위력은 전쟁 시작 후 피해를 최소화하는 능력을 말하지만 억지력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방위력은 물리적이지만 억지력은 심리적이다. 그러니까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 가공할 만한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시킴으로써 전쟁을 시작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남침하는 경우 미국이 틀림없이 보복공격을 가한다고 북한이 믿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매우 유효했던 대북 군사력을 대폭 감축한다는 사실을 북한은 어떻게 해석할까. 특히 핵문제로 대북 설득력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기에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한다는 것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지난 7월 중순 미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 일이 있다. 지금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이유가 단순히 세계전략(Global Posture Review)상 필요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반응인가? 국방부 고위관리는 전자를 주장하면서도 후자 역시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주한미군의 규모와 편성을 새로운 군사 테크놀로지에 맞게 재조정한다는 결정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세계전략의 일환이지만 북의 핵문제로 매우 민감한 시기에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는 것은 다분히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감정적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

*** 반미감정도 감축의 한 이유

다시 말하면 '미군은 환영받지 않는 나라에는 주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국 측이 믿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하나의 교훈을 주기 위해 좋지 않은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감군계획을 집행하기로 한 것 같이 보인다.

북한이 바로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이 같은 정치적 배경을 인지하게 된다면 주한미군의 억지력은 그만큼 약화된다고 보아야 한다. 대북 억지력이 약화되면 그것은 곧 우리의 안보가 불안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무엇보다 주한미군 감축 결정이 한국과 미국의 판단이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밝혀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일방적 결정으로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한다는 인상은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철수 시기도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 핵문제 협상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경원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