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장관인가 배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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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하나의 무대로 보고, 인간 하나 하나를 배우로 보았다.

그래서 그의 걸작 희곡들을 보면 그같은 생각이 반영된 대목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가령 그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맥베스' 의 제5막 5장에서 패잔병을 이끌고 사지 (死地) 로 들어가기 직전 주인공 맥베스는 이렇게 독백한다.

"인생이란 한낱 걷고 있는 그림자. 하찮은 배우, 제시간엔 무대에 나와 활개치며 안달하지만, 얼마 안가 영영 잊혀버리지 않는가.

글쎄 천치 (天痴)가 떠드는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무 의미도 없이. "

'인생은 무대요, 인간은 배우' 라는 관점에서 보면 되풀이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무대 위에 재현시켜 인간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하고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는 배우들은 '최고의 예술가' 로 대우받아 마땅하다.

실제 연극이 처음 시작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연극배우들은 존경을 한몸에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병역면제의 특혜를 받는가 하면 국가의 중요정책 결정에까지 참여했다.

그러나 인생살이에 성공적인 삶과 실패한 삶이 공존하듯 연기자의 세계에 있어서도 성공적인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가 공존한다.

또 배우로서의 성패가 실제 인간으로서의 삶에 있어서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배우로서의 삶이 인간으로서의 삶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잠재적 재능이란 거의 무한대라지만 여러 분야에서 하는 일 족족 성공을 거두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일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떤 일에 주력하고 어떤 일에 몰두하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 자신의 문제다.

장관 취임후 6일만에 가진 러시아 공연때 기업인들로부터 2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밝혀져 구설수에 오른 환경부장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소 그의 연기에 매료된 수많은 팬들이 "우리는 장관 손숙 (孫淑) 보다 배우 손숙이 더 좋다" 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해도 막상 당사자가 장관 일에만 전념하겠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세계적인 대시인으로 여러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올랐던 세네갈의 셍고르 대통령이 7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는 시를 쓰는 대통령보다 대통령을 지낸 시인으로 남고 싶다. " 이제 孫장관의 경우 배우인 장관이냐, 장관인 배우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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