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올림픽 축구팀 파라과이호에 침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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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았다. 1년 8개월을 쉼없이 항해해 온 김호곤호가 그리스 테살로니키 항구에서 조용히 돛을 내렸다.아쉽고 아쉽고 또 아쉽지만 태극전사 그들을 축복하고 푹 쉬게 해 주자.

56년만에 올림픽 8강에 진출했던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남미 강호 파라과이에게 2-3으로 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22일(한국시간) 테살로니키 카프탄조글리오 경기장에서 벌어진 8강전에서 먼저 세 골을 내주고 두 골을 따라붙었지만 결국 동점골을 뽑지는 못했다.

전반 4분 김두현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나오면서 불운은 예고됐다. 전반 18분 한국은 선취골을 허용했다. 페널티지역 오른쪽을 파고들던 프레디 바레이로를 막던 유상철이 미끄러지면서 단독 찬스를 내줬다. 바레이로의 강슛은 김영광의 손을 넘어 골네트 위쪽에 꽂혔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패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던 한국은 골을 내준 뒤 전반 30분경부터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35분 최성국이 골키퍼와 맞선 단독 찬스를 놓쳤고, 37분에는 김동진의 크로스를 조재진이 헤딩슛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빗나갔다.

한국은 후반 15분 호세 카르도소에게 헤딩골, 25분에는 다시 바레이로에게 골을 허용했다. 0-3.

말리전 같은 기적의 드라마를 꿈꾸며 이 때부터 한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세 번째 골을 먹은 지 3분 뒤 이천수가 아크 정면에서 벼락같은 중거리슛을 꽂아넣었다. 후반 33분 아우렐리아노 토레스의 핸들링 반칙으로 얻은 행운의 페널티킥을 이천수가 차 넣었다.

남은 시간은 10여분. 한국은 사력을 다해 파라과이 문전을 공략했다. 그러나 김동진의 터닝슛이 골키퍼에게 막히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파라과이는 노련하게 볼을 돌리며 시간을 보냈다.

추가시간 3분도 허망하게 지나가고 주심이 길게 종료 휘슬을 불었다. 우리 선수들은 숨을 헐떡이며 카프탄조글리오 경기장에 드러누웠다. 4강도, 메달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파라과이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을 일으켜 세워줬다. 그리스 관중도 끝까지 투혼을 불사른 붉은 옷 선수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줬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 선수들의 뚫린 가슴을 채워 줄 수는 없었다. 김호곤 감독이 이끈 아테네올림픽 대표팀이 한국 축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조용히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이라크는 호주를 1-0으로 꺾고 파라과이와 준결승전을 갖게 됐다. 이탈리아는 말리를 1-0, 아르헨티나는 코스타리카를 4-0으로 누르고 준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테살로니키=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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