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총탄맞은 '햇볕' 최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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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대중 (金大中) 정권의 햇볕정책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현 정부는 출범 이래 줄기차게 대북 포용정책을 고수해왔고 오는 21일로 예정된 베이징 (北京) 차관급회담을 계기로 남북 관계를 성큼 진전시키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러나 15일 연평도 해역에서 발생한 남북 함정간 교전사태는 베이징회담에 먹구름을 드리울 게 분명하다.

국내에서도 햇볕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은 정한 이치다.

"비료.식량 대주고 뺨이나 맞는다" 는 비판여론 속에 야당은 이미 '햇볕정책의 무효용성' 을 정치쟁점화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두가지 사안을 분리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서해상 교전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화해.협력을 추진하는 고난도 (高難度) 게임이 진행 중" 이라는 말로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되 금강산 관광과 비료지원은 예정대로 진행시킬 참이다.

서해 충돌 문제는 북한과 유엔사령부간 장성급 회담에서 논의하고, 베이징회담에서는 예정대로 이산가족문제를 비롯한 남북한 현안을 적극 해결해 나간다는 방침이라는 것. 도대체 어떡하겠다는 것인지는 모르나 분리 대응을 통해 상황을 넘기겠다는 전언이다.

비료지원 문제와 관련,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교전으로 인해 일단 수송선 항행중지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무력도발을 일으킨 데 대한 징벌이 아니라 안전 때문에 수송선 항행을 중지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의 눈치가 보여 마지못해 배를 잠시 묶어둔 듯하다.

어떻게든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기대가 물씬 배어 나오는 것이다.

북한이 이번 사태에 그치지 않고 단계적으로 무력도발의 강도를 높여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정부를 부담스럽게 한다.

그럴 경우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은 안팎의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려 들 게 분명하다.

교전이 벌어진 15일의 金대통령 발언에서도 대북 정책의 기조를 견지하려는 의지가 확연히 엿보인다.

정부는 "지금까지 공들인 햇볕정책이 일거에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 는 우려를 하고 있다.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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