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글밭 산책]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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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쓰시고 싶어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는 이야기가 있다. 있잖아요, 책장 다 넘기고 나서 나도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 생각하게 하는 그런 글이요 하고. 그때 잘 살자는 이야기는 두 팔을 벌려 알통을 자랑하는 그런 종류의 원기와는 다른 것이리라. 그건 말하자면 어느 정도 가슴의 한 구석에 통증을 동반하는 종류의 힘일 것이다. 지난 여름 머물던 해발 700m가 넘는 시골집에서 나는 그런 책을 읽었다. 그건 『아버지 노릇』이라는 책이다. 가지고 간 수많은 책 중에 하필이면 왜 그 책을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갔을까 생각해 보니 저자의 첫 산문 ‘점점’의 이 구절 때문이었다.

“예전에 제야의 밤에, 붉은 촛불 아래서 수선화가 피길 기다리며 지켜봤던 적이 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던가! 만약 그때 수선화가 당장 우리가 보라고 피었다면 그것은 대자연의 원칙의 파괴이며, 우주 근본의 동요이며, 세계 인류의 종말이 아니겠는가! 각 단계마다 차이가 지극히 미미하고 완만하게 함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사물이 변해가는 흔적을 은폐하여 그것이 항구 불변한 것처럼 사람들이 오인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점점’의 효과이다.” 그게 저자의 나이가 몇 살 때였는지 모르지만 제야의 밤에, 붉은 촛불 아래서 수선화가 피어나는 것을 보려고 잠 안 자고 있는 그가 맘에 들어버렸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저자는 화가, 그것도 만화가다. 그는 분주한 일상에서 예를 들면 늘 뒷짐 지고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사람이다.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사람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는 차분하고 느리고 여유롭다. 그의 눈에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물러나 있는 자 특유의 방관자인 것은 아니다. 그의 글은 그 자신의 일생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차 있다.

“내 나이가 입추를 알린 뒤, 심경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죽음에 대한 체감이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가을빛의 자애로운 보살핌과 죽음의 영묘한 양육에 힘입어 비로소 사는 것의 애환과 고락이 천지간에 억만 번 반복된 낡은 곡조여서 그다지 아까워 하고 애석할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 붓을 놓으려는데, 문득 서창 밖에 먹구름이 가득 밀려오고 하늘 저편에서 번갯불이 번쩍 하는가 싶더니, 우릉우릉 천둥 소리가 울리고 우박 섞인 가을비가 한참 쏟아진다. 아! 입추가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 가을의 마음이 아직 노련하지 않고 어리고 여려서 변덕스럽기 짝이 없으니, 두렵구나.”

이런 통찰을 하는 작가는 ‘서른하고 두 해의 봄과 가을을 넘긴’사람이니 예전 사람들은 정말 지금보다 훨씬 더 조숙했나 싶다. 그는 그러더니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 나쓰메 소세키의 입을 빌려 한 술 더 뜬다.

“인생 스물에는 사는 게 이익이라는 걸 알았고, 스물다섯에는 밝음이 있는 곳에 반드시 어둠이 있음을 알았고, 서른이 된 지금으로서는 밝음이 많은 곳에 어둠 또한 많고 기쁨이 짙을 때 슬픔 또한 그만큼 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나는 곁에 있는 서른 살짜리들을 돌아보고, 이 저자와 비교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려고 애썼다. 이 사람은 이미 이때 네 아이의 아버지였으니까. 그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희처럼 진실과 순결을 철저하게 간직한 사람은 영영 없을 거야. 내가 그 재미없는 이른 바 ‘일’이라는 것을 하고 돌아올 때, 아니면 상관없는 사람들과 함께 무슨 ‘수업’이니 하는 일종의 연극을 하고 돌아올 때 너희가 문 앞이나 정거장에서 나를 기다릴 때 얼마나 부끄럽고 기뻤던지! ”

그는 아이들을 늘 곁에 두고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서 인생의 원형을 보려고 노력한다. 이쯤 되면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말한 대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부끄러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삶의 복판까지 제 심장을 밀어붙일 수 있는 것 같다, 그가 그때 스물이든 서른이든……그래도 그 나이에 벌써 그런 경지에! 하는 생각을 하면 부럽고 부끄럽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이런 고요하고 잔잔한 저작을 읽으면 살고 싶어진다. 가만히, 적적하게 …책상에 앉아 서랍정리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창밖으로
‘아직은 노련하지 않아도 어리고 여린 가을’이 내리고 있으리라.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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