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조사 왜 미적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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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은 미적미적 미룰 일이 아니다.

분노하는 노동계의 총파업투쟁 등이 예고돼 있고 의혹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대통령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여당에 국회 국정조사권의 발동을 지시했다.

그럼에도 지금 여당이 국조권발동을 절충하는 대야 (對野) 자세를 보면 너무 고식적이어서 사태를 수습하려는 것인지, 악화시키려 하는지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야당이 4대의혹의 국정조사 주장에서 장관부인 옷 로비 및 파업유도 의혹만 조사대상으로 하자고 양보안을 제의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여당은 파업유도에 대한 국조권발동만 지시한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우며, 야당의 공세가 진실규명의 의도는 없고 정국주도권만 노리는 정략적 접근이어서 야당에 밀리면 정국주도권을 야당에 빼앗긴다는 이유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그래서 야당과의 협상기간이 길어져 여론의 지탄이 여야에 모두 쏟아지면 단독조사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야당도 지난번 경제청문회 때와는 달리 결국 국정조사에 참여할 것이라는 게 여당의 복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당의 이같은 자세는 시국의 중대성과 사안의 폭발성을 여전히 덜 인식한 당략적 접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최근 잇따라 터져나온 4대의혹은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해명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옷 로비 및 파업유도 의혹 사건은 민심을 정부.여당으로부터 떠나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회불안이 가중돼 공동정권 수립 이후 최대 위기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닌가.

국정조사를 한다면서 옷 로비의혹 사건을 제외한다면 민심이 승복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답답하다.

집권측이 이 문제를 다루면서 정국주도권을 누가 잡느냐 등의 한가한 정치적 계산에만 매달릴 때는 결코 아니다.

그리고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실시되는 여당 단독 국정조사 결과를 국민이 얼마나 믿어 주겠는가.

따라서 여당은 야당을 끌어안아 국민과 노동계의 치솟는 분노와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정도 (正道) 다.

야당도 궁지에 몰린 여권을 압박해 한꺼번에 정국주도권을 잡자는 식의 정략적 유혹에서 벗어나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여론의 지지를 더 받을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조기 수습하는 책임의 소재는 어디까지나 정부.여당의 결연한 자세에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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