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종시, 정말 ‘행복한’ 대안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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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가 어제 끝났다. 국회는 28일 본회의를 열어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세종시의 비효율성을 강조한 정 후보자의 소신 때문에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국회의 인준 절차를 앞둔 시점임에도 학자적 양심을 걸고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밝힌 정 후보자의 자세는 평가할 만하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정 후보자를 “충청 지역 출신으로 총대를 맨다”느니 “배신자의 꼬리를 평생 달고 살 것”이라며 인신 공격에 가깝게 몰아세웠다. 그런데도 정 후보자는 “세종시는 자족시(自足市)가 되는 게 중요하다”며 “행정부서 10개가 가면 뭣하고 5개가 가면 뭣하느냐”고 강조했다. 자족 기능이 없으면 유령도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으며, 국정 전 분야에 걸쳐 비효율의 근원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우리는 본란을 통해 수 차례 정 후보자가 지적한 것과 같은 우려를 표명해 왔다. 그럼에도 지역 정서를 두려워한 정치인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세종시 문제는 방치돼 왔다. 정 후보자가 취임하기도 전에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며 해결 의지를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세종시는 출발부터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어 스스로도 “재미를 좀 봤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국가의 전체 틀을 뒤집고,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는 행정체제 재배치를 정략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수도의 이전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이후에도 대통령 집무실을 그대로 유지하는 편법에 정치권이 야합한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정 후보자는 독일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국가적으로 행정부처가 두 군데로 떨어져 있다면 많은 인력과 서류가 왔다 갔다 해야 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9부2처2청을 옮기는 원안은 그대로 시행하고, 자족 기능을 추가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이전을 원안대로 추진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대신 정 후보자는 “과학 연구기관이나 비즈니스, 대학도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대안은 아직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세종시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예산만 낭비하고, 바로잡기도 더 어려워진다. 정 후보자가 취임하게 된다면 한시라도 빨리 좋은 의견을 모아 대안을 제시하고, 용기 있게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

정부도 더 이상 물러서 있어서는 안 된다. 야당의 지적처럼 충청 출신 총리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고 뒷짐을 지고 있어서는 ‘이충제충(以忠制忠)’의 정치적 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 대해 책임을 면할 수 없는 한나라당은 “총리 개인의 소신”(안상수 원내대표)이라는 식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당장은 정치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당당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이 책임 있는 정당의 자세다. 야당도 국가적 사업을 놓고 정치적 이익만 챙기려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진정 나라를 위하는 일이며, 충청 지역에도 도움이 되는 것인지 숙고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