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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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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참 치사하고 쩨쩨하다. 2년 남짓한 병역을 피하기 위해 어깨뼈를 억지로 뺐다 넣었다 했던 사람들 말이다. 그게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던가. 답답하고 역겨운 마음에 꺼내 든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작품이다. 그가 759년 안사(安史)의 난으로 황폐해진 지역을 지나면서 지은 시들이다. 병력을 끌어 모으려 잔혹함을 감추지 않는 세 아전, 그런 두려움에 벌벌 떨며 급기야 눈물로 가족과 헤어지는 민초들의 이야기다.

“살찐 아이는 어미 배웅을 받지만, 여윈 아이는 홀로 외롭구나…너의 하염없는 눈물을 거둬라…하늘과 땅은 끝내 무정한 법(新安吏).” “아전이 밤에 사람을 잡았다. 할아범은 담 넘어 튀었고, 할멈이 문을 나가 맞았다. (할아범 대신 할멈이 아전을 따라 전쟁터에서 밥 짓는 일을 하기 위해 나선다) 밤이 깊어 말소리 끊겼지만/ 흐느끼는 울음 들리는 듯…홀로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할아범과만 작별하였다(石壕吏).”

죽을 자리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별도 애달프다. “사나이가 갑옷·투구 차렸으니, 군례를 드려 상관께 하직한다. 늙은 아내 길에 누워 우는데, 세모에 달랑 홑옷만 걸쳤구나…죽음의 이별임을 익히 알지만, 잠깐 그 추울 것이 마음 아프다(垂老別).” “저녁에 혼인하고 새벽에 이별, 그 아니 너무 빠른가요!(新婚別)”

중국 시가문학의 황금기였던 당과 송(宋)대의 작품을 정치하면서도 담담한 한글 문장으로 번역한 『중국시가선』(지영재 편역, 을유문화사)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그냥 펼쳐 읽어 내려가면 바로 한 편의 잔잔한 다큐 작품을 대하는 듯하다. 전쟁의 엄혹함과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고통이 생생하다.

누구는 이 아픔과 두려움을 딛고 병영으로 간다. 그러나 누구는 이를 피하려 자신의 어깨뼈를 희롱한다. 세월이 바뀌어도 군입대를 피하는 자들이 그치지 않는 것은 병역이란 신성한 의무를 고스란히 완수한 자와 그러지 않은 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조선의 조정에서도 백성이 짊어져야 할 역(役)을 고르게 하고자 절치부심했다. 이른바 균역(均役)의 사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묵묵히 병역을 짊어진 다수를 제대로 대접할 줄 모른다. 그러니 미꾸라지같이 병역을 피하는 자들이 이어진다. 균역의 중대성을 다시 생각하자. 그에 앞서 경찰은 남김 없이, 철저하게 병역비리를 파헤쳐야 한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