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이사회 운영실태] 사장 결정이 곧 정부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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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기업들은 이사회의 과반수를 비상임이사로 충원하고 있으나 실제론 사장의 결정을 거의 그대로 따르는 '거수기' 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문제가 된 조폐공사 구조조정의 경우 조폐창 통합 조기 강행이라는 사장 결정에 대해 비상임이사들은 제대로 된 의견 제시도 못한 채 찬반투표 한번 없이 의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상임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했던 K교수는 "통합 조기 강행 결정에 일부 이사들이 노조측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피력했지만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라' 는 사장의 말 한마디에 찬반투표도 없이 사장 결정을 따랐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원칙적으론 투표를 해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하지만 이사회의 분위기나 관행은 그렇지 않다" 고 말했다.

또 다른 비상임이사 P교수도 "아직 공기업 이사회는 사장의 결정을 부결시키는 풍토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며 "몇명 안되는 이사들이 모여 무슨 찬반 투표냐는 분위기였다" 고 전했다.

다른 공기업 이사회의 사정도 거의 비슷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 한 공기업 관계자는 "자율경영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정부의 입김이 공기업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이사회 분위기가 달라지겠느냐" 며 "사장 결정은 곧 정부 방침이라는 인식이 이사회에 팽배한 것은 사실" 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기업학회 이만우 (李晩雨.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3월 관계법이 개정돼 비상임이사의 권한과 책임이 대폭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이사회의 풍토는 여전하다" 며 "앞으론 비상임이사들도 회사 결정에 대해 상법적 책임을 갖는 만큼 적극 개입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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