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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은 챔피언을 먹었고, 김지훈은 챔피언이 즐겁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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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일요일 아침에 날아온 뉴스는 놀라웠다. 지난 13일,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청년이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 됐다. 챔피언이 됐다는 복싱기구(국제복싱기구· IBO)도 귀에 익지 않았다. 그런데 기시감(데자뷔)이 느껴졌다. 청년이 챔피언이 된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고, 그는 적지에서 그 나라 국적을 가진 챔피언을 이겼다. 그래서 복싱팬들은 대번에 35년 전의 “엄마 나 참피온 먹었어”와 “대한국민 만세다”를 떠올렸다. 새 챔피언의 이름은 김지훈(22)이다. IBO 수퍼페더급 챔피언.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승전보

김지훈은 챔피언이 되었지만 귀국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왼쪽 눈자위에 멍자국, 흰자위에 핏기가 선명하다. 그는 IBO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WBA나 WBC 같은 메이저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최정동 기자

졸라니 마랄리(32·남아프리카공화국)의 키는 1m80㎝가 넘었다. 수퍼페더급(58.97㎏ 이하)에서 그렇게 키가 큰 선수는 드물다. 탄력 넘치는 근육이 길게 뻗은, 흑인 특유의 체형. 김지훈이 자신보다 큰 상대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김지훈의 키는 1m76㎝나 되지만 적지인 요하네스버그의 링 위에 선 그는 작아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젊은 인파이터는 뒷걸음질 칠 줄 몰랐다. 경기 초반 버팅을 당해 왼쪽 눈이 부어올랐지만 눈빛은 이글이글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는 챔피언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마랄리는 6회까지 경기를 주도했다. 주무기인 왼손 펀치를 숨기고 변칙 공격을 하던 마랄리가 7회부터 본래의 왼손잡이 자세로 돌아왔다. 김지훈은 더욱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9회 중반,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마랄리의 관자놀이에 적중했다. ‘걸렸다!’ 뼛속까지 전해지는 짜릿한 맛. 김지훈은 승리를 확신하고 왼손 어퍼컷과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연타로 터뜨렸다. 장신의 챔피언은 무너져 내렸다.

중립 코너에 선 김지훈은 상대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멋지게 끝낼 자신 있었다. 비틀비틀 일어선 챔피언의 다리는 이미 풀렸다. 눈은 초점을 잃었다. 도전자의 TKO승이 선언됐다. 한국에서 2년2개월 만에 남자 복싱 세계챔피언이 탄생했다.

한국 복싱은 터널에 갇혀 있다. 최요삼이 2007년 12월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컨티넨털 타이틀 방어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뒤 뇌출혈로 사망했다. 마지막 세계챔피언이었던 지인진은 2007년 7월 이종격투기로 전향하면서 세계복싱평의회(WBC) 페더급 타이틀을 반납했다. 챔피언이 처참하게 쓰러지고, 생계를 꾸리지 못해 타이틀을 내놓는 것이 한국 복싱의 현주소다. 배고팠던 시절, 전 국민을 울리고 웃겼던 복싱은 그렇게 빛을 잃어갔다.

다 타고 재만 남은 것 같은 한국 복싱에 김지훈이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메이저 기구는 아니지만 IBO 챔피언에 오르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경기 후 김지훈은 복싱 랭킹 전문 사이트(www.boxrec.com)가 선정한 수퍼페더급 9위에 올랐다. 소속 단체를 초월해 매긴 랭킹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톱10에 진입했다. 10월 발표될 주요 기구 랭킹에서도 5~10위에 들 것이 확실하다.

김지훈의 스승인 김형열(55) 일산주엽체육관장은 “IBO 챔피언도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다. 현존 최강의 복서라는 매니 아퀴아오(필리핀)도 IBO 라이트웰터급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김지훈의 기량이 세계 수준에 올라 있는 만큼 머잖아 메이저 기구 타이틀전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훈은 “챔피언이 여럿일 수는 없다. 체급의 최강자가 진짜 챔피언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 두려움 없이 다른 챔피언과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차분하면서도 심지가 느껴지는 말투는 그가 얼마나 잘 단련된 챔피언인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저돌적인 파이터 닮은 꼴

홍수환(가운데)은 1974년 남아공의 더반에서 아널드 테일러(오른쪽)를 누르고 밴텀급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적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 기린아였다. [중앙포토]

김지훈은 모든 방면에 능한 웰라운디드(well rounded) 파이터다. 큰 키에 1m88㎝의 리치는 최고의 강점이다.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어떤 기술로도 KO승을 이끌어낼 수 있는 펀치가 있다. 오른손잡이지만 왼손 사용에도 능하다. 인파이팅을 하면서도 결정타는 맞지 않는다. 경쾌한 리듬으로 상대를 압박할 줄 안다. 김 관장은 “22세밖에 되지 않지만 김지훈은 벌써 24전(19승5패)을 치른 선수다. 또한 두려움 없이 밀고 들어가는 근성이 남다르다”고 칭찬했다.

김지훈은 적지에서 챔피언을 쓰러뜨렸다. 판정으로 이길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점수로는 뒤지고 있었어도 싸움에서는 지지 않은 채 KO를 노렸다. 또 김지훈은 지난해 5월 세계적인 강타자 코바 고골라지(그루지야)를 1회에 때려 눕히기도 했다. 장소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였다. 김득구가 1982년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급 챔피언에 도전했다가 TKO 패한 뒤 숨을 거둔 곳이다. 이후 백인철(87년)·이승순(89년)·김광선(92년)·최재원(94년) 등이 라스베이거스 링에 섰지만 모두 KO패 당했다. 한 맺힌 땅에서 26년 만에 날아온 한국 선수의 승전보였다.

이때부터 김지훈은 해외에서 더 인정받았다.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 복싱은 미래의 챔피언에게 최소한의 환경조차 제공하지 못했다. 어차피 그는 곱게 클 생각 따위는 없었다. 부딪히고 깨지고, 그래서 더 강해지길 바랐다. 부담감이 홈보다 서너 배는 큰 원정경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김 관장은 “현재 국내 사정으로는 타이틀전을 치를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하게 해외에서 도전하기로 했다. 챔피언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예전 챔피언들처럼 안방에서 싸우지만은 않을 생각이다. 좋은 매치가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날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채급만 달랐지 김지훈은 대한민국 최고의 복싱 영웅 홍수환을 떠올리게 한다. 홍수환은 74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WBA 밴텀급 세계타이틀전에서 아널드 테일러(남아공)를 네 차례나 다운시킨 끝에 15회 판정승을 거뒀다. 홍수환 특유의 저돌성이 빚어낸 화끈한 승리였다. 김기수가 66년 서울에서 WBA 주니어미들급 타이틀을 따내 한국인 최초로 세계챔피언이 됐지만 원정을 가 벨트를 따낸 건 홍수환이 처음이었다.

당시 홍수환은 방송국이 연결한 국제전화에서 “엄마, 나 참피온(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다. 챔피언도 ‘먹었다’고 표현한, 배고픈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그래, 대한민국 만세다”라고 소리쳤다. 그땐 해외에 나가면 프로선수도 국가대표라고 생각했다.

홍수환은 77년 WBA 수퍼밴텀급 타이틀전을 벌였다. 헥토르 카라스키야(파나마)에게 네 번이나 다운을 당했지만 3회에 역전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역시 적지인 파나마에서 이뤄졌다. 지옥 같은 원정경기에서 이긴 홍수환 덕분에 한국 복싱은 불이 붙었다. 이후 홍수환보다 뛰어난 성적을 올린 챔피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복싱 전문가들이 가장 뛰어난 챔피언으로 홍수환을 꼽는다. 홍수환은 예정된 실패와 온몸으로 싸워 이긴 풍운아였다. 김지훈은 홍수환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 복싱 중흥시킬 영웅 될까
한국 복싱은 35년 전 홍수환이 그랬던 것처럼 김지훈이 복싱의 중흥을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을 얘기하기엔 너무 이르다. 홍수환과 김지훈의 교집합은 남아공에서 챔피언 벨트를 따냈다는 것, 그리고 파이트머니가 1만 달러 안팎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다. 35년의 시차를 둔 둘의 파이트머니가 비슷할 정도로 한국 복싱의 현실은 암담하다.

김 관장은 “김지훈이 버는 돈은 훈련비와 용돈을 쓰고 나면 남지 않는다. 스폰서도 아직 없다. 스폰서는 무슨, 내가 스폰서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지훈은 복싱을 시작한 이후 김 관장의 지원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챔피언에 오를 때까지 경제적 도움을 준 사람은 스승밖에 없었다.

김지훈도 안다. 그가 샌드백을 치며 챔피언을 꿈꾸는 동안 대선배가 뇌출혈로 비명횡사했다. 유일했던 세계챔피언은 배가 고프다며 벨트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복싱은 더 이상 가난을 이겨내는 수단이 아니다. 냉엄하게 말하면, 21세기 한국 복서는 ‘88만원 세대’의 일원이다.

김지훈은 신일정보산업고 2학년이었던 2002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함께 체육관에 다녔다. 그러나 학기가 시작되자 그만뒀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김 관장이 1년 뒤 다시 불렀다. “너, 진로는 정했느냐?” “아뇨. 생각 중입니다.” “그럼, 복싱을 직업으로 가져봐라. 내가 도와주마.” 김지훈은 그날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오늘까지 달려왔다. 재능을 발견하고 재미를 붙이자 요즘 친구답게 기꺼이 인생을 걸었다. 그는 오전 6시 로드워크로 하루를 열어 오후 6시까지 7년간을 하루도 쉬지 않고 강훈련을 해왔다. 체육관을 나서면 놀 거리가 넘쳐나지만 복싱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김 관장은 “세상에 치명적인 유혹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지훈이는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지금껏 잘해왔다. 그런 집념은 축복받은 재능이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라도 놀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데뷔 초 그는 다섯 번이나 졌다. 그러나 얻어맞는 것을, 패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한 상대와 대차게 싸웠다. 일찍부터 깨지고 부딪친 덕에 김지훈은 2005년 한국권투위원회(KBC) 페더급 챔피언에 올라 이듬해 범아시아권투연맹(PABA) 페더급 챔피언, 이번에 IBO 수퍼페더급 챔피언을 휩쓸 때까지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최근까지 9경기 연속 KO승 중이다. 평소 체중 67㎏인 김지훈은 라이트급(61.23㎏ 이하) 선수이지만 주요 경기는 수퍼페더급으로 싸웠다. 평소 엄청난 훈련을 하는 탓에 뺄 지방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남은 수분을 쥐어짜며 살인적인 감량을 했다. 밥은커녕 물 한 컵도 마음껏 먹지 못한다.

김지훈은 “얻어 맞으면 아프다. 지면 억울하다. 체중 감량은 고통스럽다. 수퍼페더급 경기를 뛰고 나면 습기 없는 발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다. 침도 나오지 않아 입안은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복싱이 재미있다. 승리의 쾌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체력이 정신력을 만들고, 정신력은 체력을 키운다.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 훈련에 힘을 다 써버린다. 에너지를 모두 연소하면 비워진 곳에 또 다른, 더 많은 힘을 채울 수 있다. 마랄리도 그렇게 쓰러뜨렸다. 체력 안배를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밀어붙였다. 죽도록 훈련해온 나를 믿었다. 어차피 주먹은 체력으로 치는 것이 아니다. 정신력이다.”

챔피언을 먹었어도 그는 여전히 굶주려 있는 것 같았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김지훈 프로필
생년월일 1987년 1월 17일
체격 1m76㎝, 67㎏(평소 체중)
가족 부모, 2남 중 장남
출신학교 일산 신일정보산업고
부천대학(휴학 중)
주요 경력
2005년 한국권투위원회(KBC) 페더급 챔피언
2006년 범아시아권투연맹(PABA) 페더급 챔피언
2009년 국제복싱기구(IBO) 수퍼페더급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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