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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15. 모래시계 세대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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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산 자여 따르라' 로 끝나는 이 노래는 '모래시계 세대' 지식인들의 자기맹세이기도 했다.

긴급조치에 대한 논의조차 금지한 '긴급조치 9호' 의 서슬퍼렀던 70년대 중.후반, 번득이는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항상 쫓기듯 대학을 다녀야 했던 세대. 학교 잔디밭을 차지한 형사들을 '짭새' 라 했다가 "형사님이라는 좋은 말 두고 왜 '짭새' 라 하느냐" 며 코피 터지게 맞기도 하던 시절의 그들.

교수가 강의 중 데모를 주동한 제자를 두둔했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끌려가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던 젊은이들. 재학중 '80년 광주' 를 겪고 '자괴감' 으로 몸서리치면서 새로운 현장을 찾아나섰던 이들이 바로 '모래시계' 세대이다.

그들은 숨막힐 듯 억눌린 상황속에서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이 시위가 시작되기 무섭게 덮쳐 상황을 끝내버리자 주동자들은 '5분 집회' 의 자유라도 확보하기 위해 나무 위로, 도서관 난간 위로 자꾸만 높이 올라갔다.

선배들이 구속되면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나가 각오를 다졌고 교회에서 열리는 노동자 집회에 참가하면 눈물을 흘리며 자괴 (自愧) 했다.

그래서 최근 박정희 전대통령과의 화해 운운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대

이기도 하다.

재학중 '광주사태' 를 경험한 이들에게 광주는 '업보' 였다.

말끝마다 외치던 '민중' 이 막상 남도땅에서 폭력에 저항하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데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깊은 '죄책감' 에 빠졌고 남도의 '피울음' 을 자신의 '탓' 으로 가슴 깊이 새겨야 했다.

이들은 '산자여 따르라' 로 새로운 맹세를 다졌다.

학교앞 선술집에서 낭자하게 토해내던 낭만주의를 걷어내고 '과학' 으로 향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정을 '과학' 으로 담아내지 못하면 또다른 실패만 반복한다는 뼈아픈 각성에서다.

지식인 운동사를 전공한 김동춘 교수 (성공회대.사회학) 의 지적처럼 '이론의 현실화, 운동의 과학화' 는 80년대초 대학을 막 졸업한 모래시계 세대의 '화두' 였다.

그때 이들이 달려간 곳은 노동현장. 당시 '현장' 은 이들에게 희망이면서 일종의 면죄부이기도 했다.

80년대초 대학을 졸업하고 대거 현장으로 투입된 이들은 오늘날 노동운동의 핵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실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떠났음에도 어느 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부대가 지금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김태현 민노총 고용안정센터 소장, 정성희 대회협력실장 등 민노총의 싱크탱크뿐 아니라 전국의 노동현장에 뿌리박고 일하는 운동가들은 대략 1백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간 또 한곳이 대학원. 이념적 자율성을 지녔다는 장점과 함께 기존 학문과는 다른 '현장성 있는 학문' 을 추구하다보니 제도권 학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해외 유학을 떠나라는 교수들의 권유도 잘 먹히지 않았던 시절. '소장 진보학자' 로 이름붙여진 이들은 최장집 (고려대.정치학).유팔무 (한림대.사회학).박호성 (서강대.정치학) 교수 등 재학중 시위로 퇴학당해 불가불 유학을 갔거나 학생운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선배 학자들과 결합, 88년 6월 한양대에서 2천여명의 교수.대학원생이 참여한 대규모의 학술단체협의회 (학단협) 를 결성한다.

정해구 박사 (한국정치연구회 부회장). 박형준 (동아대. 사회학).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 도진순 (창원대.한국사) 교수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 단체는 80년대 주요 논쟁의 주체이자 비판적 지식인의 학교였다.

대중.정치조직 논쟁, 반미자주.반독점민주화 논쟁, 사회구성체 논쟁, 사회주의 평가논쟁 등을 거치면서 이들은 가장 논쟁적 세대로 길러졌다.

거의 전 분야의 학자들이 포진한 학단협은 이제 회원의 절반이 교수와 박사가 됐으며 이들은 학계에서 새로운 대안이다.

회원들은 주요 학회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이 없으면 학술회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및 운동단체, 정당에서까지도 주요한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다.

노동현장.대학원 출신들의 활동에 더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비판적 지식인의 조직화.체계화.다양화가 이들 세대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이다.

고세현 창작과 비평사 사장의 설명처럼 "80년대초 대학을 졸업하면서 사회진출 방식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현장' 을 중심축으로 새로운 비판적 지식 영역을 개척한" 이들은 이제 학계는 물론 언론.시민운동.환경.출판.의료.문화 등 모든 지식분야에서 비판적 대안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시민운동의 씨앗을 뿌린 것도 이들이다.

경실련 창립초기부터 활발하게 참여한 유종성 사무총장을 비롯, 각계 전문가를 모아 사실상 참여연대를 만든 박원순 사무처장이 대표적 인물. 이같이 새로운 사회비판 영역을 구축한 시민운동에 대해 "모래시계 지식인들의 성공적 표본이 될 것" 이라고 김호기 교수 (연세대.사회학) 는 평가한다.

모래시계 지식인이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언론계. 70년대 후반 동아투위 등 선배 언론인들의 활약을 지켜본 이들은 자연스레 언론에서도 비판적 역할을 모색해 이젠 각 언론사에서 중견의 위치를 맡고 있다.

김창희 (뉴스플러스). 홍준호 (조선일보). 이백만 (한국일보). 곽병찬 (한겨레). 이인용 (MBC 앵커). 손석희 (MBC 아나운서) 씨등 대학 졸업과 함께 언론계에서 활동한 사람은 물론 최영선. 윤석인씨 등 87년 6월항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창간한 한겨레신문에 참여한 사람들, 그리고 신명식 ( '내일신문' 편집국장).백병규 ( '말' 지 편집국장) 씨 등 새로운 매체에 참가한 사람 등 다양하다.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이들이 대부분 각 언론사 노조를 이끌어 왔다는 점. 엄주웅 (언노련 기획실장). 현상윤 (KBS노조위원장) 씨와 PD연합회를 이끌어왔던 최상일 (MBC PD) 씨등이 대표적 인물. 최근에는 박사학위를 가진 모래시계 지식인들의 언론 활동도 두드러진다.

지난 대선토론 사회자로 일약 유명해져 KBS2의 '정범구의 세상읽기' 를 진행했던 정범구 박사, 정박사에 이어 이 프로를 맞은 정수복 박사가 대표적. 외국에는 이미 오래전에 정착한 아카데믹 저널리즘을 개척하고 있다.

이들의 일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교육현장에 뛰어들어 전교조 결성의 실무 역할을 맡았다.

해직 이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지만 김현준 대외협력실장을 비롯해 그 주축은 역시 모래시계 세대다.

지금 여성운동계에선 여성민우회 사무국장 윤정숙씨를 비롯, 이론과 실천을 겸한 인물들이 여성운동의 2세대를 이루고 있다.

여성학 전도사 오숙희씨와 '아우성' 으로 유명한 구성애씨는 대중매체를 통해 여성과 성문제를 확산시킨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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