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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본 중국 6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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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은 평화공존 5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영토 보전과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이 그것이다. 한편 중국은 “군인 1000명을 잃을지언정 한 뼘의 영토도 잃을 수 없다(寧失千軍, 不失寸土)”고 주장한다. 영토 침범만큼은 추호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중국은 건국 이래 크게 여섯 차례 전쟁을 벌였다.

1950년 중국인민지원군은 한국전에 개입했다. 그들은 이를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불렀다. 한국군과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국 군대와 교전했다. 78만 명이 참전해 14만 명이 전사했다. 62년 10월에는 인도와 국경분쟁이 발발했다. 중국군 722명, 인도군 3128명이 숨졌다. 인도군 여단장을 포로로 잡았다. 69년 3월에는 중·소 국경선인 우쑤리(烏蘇里)강 전바오(珍寶)섬에서 탱크까지 동원한 중·소전쟁이 벌어졌다. 수백 명이 맞붙은 전투였지만 핵전쟁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은 “자위 반격전의 승리로 중·미·소에 의한 삼국 정립의 국면이 형성됐다”고 자평했다. 러시아는 91년 전바오 섬이 중국 영토임을 인정했다.

65년부터 73년까지 베트남전쟁에서 중국군은 고사포부대와 공병 위주로 15만 대군을 파병해 미군과 교전했다. 1446명이 전사했다. 74년 1월 시사(西沙)군도의 중국령 섬을 베트남이 점령한다. 중국이 추가 함정을 파견하기 위해선 대만해협을 통과해야 했다. 장제스도 이를 승인했다. 중국 해군은 베트남군을 격퇴했다. 79년에는 친중국적인 캄보디아를 점령한 베트남과 전쟁을 벌였다. 이른바 중월전쟁이다. 중국은 60만 병력과 400여 대의 탱크를 동원했다. 2만5000여 명이 전사했다. 지금도 양국은 모두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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